소설 〈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 속의 역사 이야기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이 코너에서 연재할 이야기는 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속에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을 돋보기로 확대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 25화 단종 옥좌에서 물러나다
 

1. 단종의 주위 사람들을 제거하다

혜빈 양씨는 세종의 후궁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단종을 위해 세종은 혜빈 양씨에게 단종의 양육을 부탁했다. 그래서 혜빈 양씨는 단종을 친아들보다 더 극진히 보살폈다. 단종이 성장한 뒤에도 혜빈 양씨의 품에서 잠들기를 원했을 만큼 혜빈 양씨와 단종 사이는 각별했다.
임금이 죽으면 그 후궁은 궁을 나가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종이 혜빈 양씨를 놓아주지 않으니 수양대군으로선 그녀가 눈엣가시였다. 더욱이 그의 세 아들은 혜빈의 위세를 등에 업고 단종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으니 수양대군으로서는 더 이상 방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사유로 대역죄인 역모죄를 뒤집어 씌웠다.

▶ 금성대군은 무사들과 은밀히 결탁하고 그 일당에게 후히 정을 베풀었다. 또한 그는 친족 최도일의 딸을 단종비로 세우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온갖 계교로 왕실을 이간질하였다.
▶혜빈양씨는 상궁들과 결탁하여 그들에게 노비를 하사하는 등 권세를 부리며 은밀히 서로 왕래하였다.
▶혜빈 양씨의 아들들은 경혜공주 부부와 결탁하여 권세를 부리고 불법한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저질렀다.
< 세조실록 1년 윤6월 11일 >

괘씸죄일 뿐 역모 죄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설픈 죄목으로 엮어 수양대군은 단종의 주위 사람들 모두를 도려내는 데 성공했다. 혜빈 양씨와 그의 세 아들, 금성대군, 영양위 정종(경혜공주 남편이자 단종의 자형)을 귀양 보내니 단종은 그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옥쇄를 수양대군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수양대군에게 옥쇄를 바치던 경회루

2. 성삼문의 눈물

왕위 찬탈 하루 전날인 윤6월 10일 수양대군은 기막힌 인사이동을 기획했다. 즉 옥쇄를 관할하는 동부승지 자리에 한명회가 있었는데 그를 우부승지로 옮기고 당시 예조참의였던 성삼문을 동부승지에 제수하였다.
왕위를 찬탈하는 역사의 현장에 성삼문을 이용하려는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동부승지가 된 성삼문은 꼼짝없이 옥쇄를 넘겨주는 일을 맡아야만 했다. 그날의 일을 연려실기술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성삼문은 옥쇄를 들고 경회루로 나아가 내관 전균에게 전하면서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러자 세조가 엎드려 겸양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가 머리를 들어 빤히 쳐다보았다.
<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고사본말 >

또한 그날 분함을 참지 못한 박팽년은 경회루 연못에 빠져 죽으려 했다. 그러자 성삼문이 말리기를

“임금께서 아직 상왕으로 계시고, 우리들이 살아 있으면 일을 도모할 수 있다. 다시 도모하다가 이루지 못하면 그때 죽어도 늦지 않다.” 하매, 박팽년이 그 말을 따랐다고 한다.

세종은 일찍이 혜빈 양씨 소생인 서자 영풍군을 박팽년의 딸에게 장가들게 하여 사돈관계를 맺었다. 그래서 박팽년은 사위 집안을 도륙한 수양대군과는 결코 한 배를 탈 수 없는 견원지간의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박팽년이 훗날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에 가장 앞장을 섰던 이유도 이러한 연유에서였다.

3. 혜빈 양씨의 최후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면서 역모에 관련된 혜빈 양씨, 금성대군, 영양위 정종의 목숨을 세조에게 구걸하였다. 즉 이들의 목숨을 살리는 대신 왕좌에서 물러나는 조건부 빅딜이었다. 어차피 왕위를 뺏길 바에야 이들의 목숨이라도 구해야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뒤 오래지 않아 조정의 여론은 이들을 그냥두지 않았다.

“양씨를 죽이지 말라는 상왕의 부탁을 전하께서 허락하신 것은 사사로운 허락에 불과합니다. 이제 전하께서 조그마한 신의를 저버리시고 대의를 쫓으신다 해서 신의를 잃을 것이 없으니, 청컨대 법에 의해 처단하소서.”
< 세조실록 1년 8월 27일 >

결국 세조는 혜빈 양씨를 청풍으로 귀양을 보냈다가 그곳에서 교형(목매다는 형벌)에 처해 죽였다. 또한 풍수에 관하여 수양대군에게 자주 맞섰던 목효지도 이때 죽였고, 경혜공주가 어려서 궁 밖 조유례의 집에 피접 나가서 살았는데 그 조유례도 함께 죽였다. 모두 억울한 죽음이었다.

 

- 26화 < 단종 복위 운동> 편이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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