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 (후기)

앞의 글 말이다. ‘아하, 택시기사의 일상이구나.’하면서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틀림없이, 달짝지근한 느낌에 빠져들어 ‘자식, 가방만 돌려줄 것이지. 예쁜 여자만 보면……. 그러니 쪽박 차고 앉았지.’하면서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부럽다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만일 여자라면, ‘나도 한번 택시에 가방 두고 내려볼까? 기왕이면 예쁜 속옷도 넣어서 말이야.’라면서 그 후에 올 상황을 가능한 로맨틱하게 상상해보고는 혼자 즐거워했을 수도 있다. 물론 물어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남자라면? ‘택시기사란 직업이 은근히 재미있는 직업이네, 나도 은퇴하면…….’ 하고, 잠시라도,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야 남자니까.

그러나 다 읽고 나면 실망스러움과 동시에 헷갈릴 것이다. 써놓은 모양으로 보아 택시기사의 에피소드 같은데 정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 ‘혹시 소설이라고 썼나?’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밋밋한 스토리에 구성도 엉망임에 ‘소설은 아닌 것 같은데.’하고 생각하다가…….

 

윗글을 소설이라고 우기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온전한 사실도 아니므로 에피소드라 할 수도 없다. 60%쯤의 사실에 30%쯤 사실이나 다름없는, 너그러이 봐줄 수 있는 허구에, 10%쯤의 완전한 뻥을 섞어 그려낸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이야기’라 해두자.

 

2년 전 여름, 앙증맞은 여자 용품이 가득 든 가방을 주운 적이 있었다. 연락처를 찾고자 여자의 가방을 뒤졌는데 신분을 알 수 있는 그 무엇도 발견할 수가 없었고, 가방 속의 주머니에서 예의 그 사진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어쩌면, 외로울 때마다 들고 봤을 그 사진……. 어떡하든 가방을 돌려주고 싶었다. 몇 번이고 그 여자가 내린 자리에 가 봤으나 여자를 만날 수가 없었다.

5년 전 초가을이었다. 내 택시에 타서 무작정 바다로 가자고 했던 여자 손님 한 분이 있었다. 그날, 때 이른 강추위가 몰아쳤는데 얇은 블라우스 차림이었던 여자는 삼십 분도 넘게 삼덕항 방파제에 앉아 있었다. 미동도 없는 그 여자가 혹시 뛰어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떡하든 여자를 차에 태우고 싶었다. 자판기 커피를 두 잔 뽑아서 여자에게 한잔 권하면서 말을 건넸다.

“손님, 기왕 바닷가에 앉았을 거면 경치 좋은 곳에 가시지요. 밤바다 경치가 그만인 곳이 지척에 있는데요.”

추워서 그랬던지 여자가 예뻐서 그랬던지 잘 모르겠지만 허둥대다가 손등에 커피를 쏟았다. 여자는 ‘킥 ’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아저씨는 바람둥이 같아요. 그것도 어수룩한 바람둥이요.’라면서 잔잔히 웃었는데 젖은 그녀의 목소리가 어찌나 애처롭던지…….

 

언젠가 저녁 무렵이었다. 달아마을에 손님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그러니까, 달아공원을 지나쳐 연명 쪽으로 100여 미터쯤 왔을 때였다. 약간 우로 굽은 도로 전면의 바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다를 내리훑고 다니는 것이 통영택시기사이긴 하지만 그 시간에 달아의 언덕 위에 서기는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

바다는 장관이었다. 감청색이 감도는 하늘 밑에는 이미 어둠이 깔린 바다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 바다와 하늘의 경계면에 여기저기 옹크리고 앉은 새까만 섬들에 하나 둘 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 등은 섬 자락에 뜨는 별 같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섬 자락에 별 하나 켜들고 그것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섬사람들의 힘겨운 세상살이가 아름다웠다. 섬 자락에 인간이 밝혀 든 등 하나, 그것은, 단언하건대, 별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 아래 섬 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그들이 밝혀든 등이 그렇듯 아름답게 보인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로 섬사람들 하나하나를 내 택시에 모시고 그 언덕에 서고 싶었다. ‘당신이 밝혀든 등은 단순한 등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이다.’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푼수같이 산양 삼거리에서 우회전하고 말았다. 산양 도서관 뒤로 돌아나가는 길로 지나치면서 둔전마을 산자락에 옹크려 앉은 내 집을 보고 싶었다. 내 집도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내 집 처마에 흐릿하게 켜둔 백열등도 별은 아닐지라도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돌아올 나를 위하여 켜둔 등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둔전마을 내 움막으로 들어오던 때가 생각이 난다. 딸아이를 생각해서 어떡하든 시내에서 버티고자 했으나 그조차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능력에 맞는 집이라고는 13평짜리 주공아파트밖에 없었는데 노부모와 마누라 딸아이 그리고 나, 다섯 식구가 머물기에는 턱없이 작은 집이었지만 가까운 곳에 사글셋방이라도 하나 더 얻으면 마누라와 내가 그 방에 머물며 들락거리면서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계약금을 치르기로 한 날, 어머니를 모시고 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집주인 여자가 낯빛을 바꾸었다. 노인이 있으면 집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지만 어쩌겠는가. 집주인이 못 주겠다는데……. 그 후 몇 곳을 더 알아봤으나 역시 노부모가 걸림돌이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만 보았던, 도저히 내 주변에서는 있을 것 같지 않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쫓기다시피 들어온 내 움막……. 딱히 달아의 언덕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돌아온 그날부터라고는 말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집에 익숙해져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간에 내가 사는 이 움막에도 애착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둑새벽에 집을 나설 때, 그리고 밤새 시내를 뺑뺑이 돌다가 다음날 어둑새벽에 내 집에 들어설 때, 내 집이 올려다보이는 골목 어귀에 서서 처마에 켜둔 백열등을 바라보곤 한다. 때로는 을씨년스럽게도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별 같기도 하다. ‘별이려니.’ 하는 내 마음 탓이겠지만 말이다.

 

소설이 무엇인지 숫제 모를뿐더러 그렇다고 읽어본 소설조차 몇 권 되지도 않는 처지다. 그러나 달아의 바다를 배경으로, 위의 두 여자 손님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에라, 일단 시작하고 보자!’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객기는 단지 객기인지라 불안함을 아주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첫 장을 여는 동시에 팽개쳐버리고 ‘아무런 감흥이 없노라.’ 할 것만 같아 불안했다. 어떡하든 읽기 시작한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그래서 손님과 택시기사인 나 사이에 살그머니 남녀 간의 분홍빛 감정을 집어넣었는데 그러다보니 더욱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글이 되고 말았다.

‘섬 자락에 밝혀든 등 하나’

내 주제가 그러함에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섬 자락에 밝혀든 등’ 이야기를 감행했던 것은, 비록 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 월세로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처마에 등 하나를 밝혀 놓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이려니 여기면서, 그것을 지키려고 바동거리는 나 자신을, 호들갑 속에 부끄러움을 슬쩍 감추고,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겠는가.

글을 읽는 사람들 각자 자신이 처마에 밝혀든 등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미 넉넉하여 싫증이 난 사람에게도 애초에 그들이 아무것도 갖지 않았을 시절 애틋하게 밝혀 들었을 그들의 등을 돌이켜 곱씹을 기회가 된다면 그 또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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