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회식자리가 많아지면서 어느 때보다 취객들을 태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강남역에서 한 취객을 태웠던 기억이 있다. 그 취객은 이미 인사불성이었다. 탈 때부터 눈이 풀려 있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으으음... 아안안양, 펴평촌”

입은 하나지만 목적지는 둘이었다. 어르고 달랬다. 과천까지 오면서 말을 걸어 본 결과 평촌 우체국이 목적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 취객이 갑자기 핸들을 잡더니 자기 마음대로 휘젓기 시작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핸들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취객은 택시 안 이곳저곳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뒤에 따라오던 버스가 지그재그 가는 내 차를 향해 크락션을 크게 울리기까지 했다. 가까스로 대로를 지나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피했지만 난동은 계속됐다.

행인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모두 남의 일처럼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지나가는 순찰 전경에게도 도움을 청했지만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지나쳐 버렸다. 결국 1시간가량 타고 온 1만이 넘는 요금을 포기하고 손님을 가까스로 인근 파출소에 내려줬다.

시간도 버리고 택시요금도 받지 못했지만 몸싸움을 벌이며 온몸에 힘을 다 빼버렸다. 그렇지만 아무 사고없이 취객소동이 마무리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 맘때 쯤이면 어김없이 승차거부 문제가 부각된다. 물론 얌체같은 택시기사들도 있다. 하지만 늦은밤 추운 밖에서 떨고 있을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성실히 운행하는 택시기사들이 더욱 많다. 일부 택시기사들 때문에 전체 기사들이 매도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불량기사가 승객에게 물의를 일으킨 예도 없지는 않지만, 밤이면 밤마다 여기저기서 취객들로부터 골탕 먹는 기사는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기사도 대한민국의 시민이다.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늘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는 것은 기사들 몫인 것 같다.

더불어 요즘에는 버스나 택시기사들의 안전문제도 화두가 되고 있다. 승객이 난동을 부리거나 구토를 일삼는 것은 예삿일이고 심지어 폭행이나 구타 등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손님이 무서워서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으면 살벌하고 정이 없어진 세대이지만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기에 오늘도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곤 한다. 택시는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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