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영 작가

얼마 전에 받아 둔 세금 고지서가 보이지 않았다. 납부 만기가 가까운 것 같은데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아도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세무서에 전화를 해보니 고지서를 재발급해서 우송해 주겠다고 했다. ‘어쩜, 세상이 많이 달라졌구나.’ 전 같으면 세무서에 가서 납부해야 하는데 시간과 발품이 절약된 것이 고마웠다.

오후에 외출했다 돌아오니 세무서의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납부 마감 일이 모래인데 내가 고지서를 받아서 납부하려면 늦어 억울하게 연체료를 물어야 하니 자신이 대신 납부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공무원이 있을 수가 있나.’ 고맙다는 생각은 나중이고 내 첫 번째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우리나라의 일이 아니고 어느 딴 나라에서나 있음직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나같이 8.15 해방과 6.25 이후의 혼란기를 산 사람들에게는 공무원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 있었다. 불친절하고 목이 뻣뻣한 사람이 공무원이고, 급행료를 주지 않으면 일이 안 되는 곳이 관공서였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멀리하고 싶은 곳이었다.

여러 해 전에 구청에 가서 꼭 알아봐야 할 일이 있었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청사에 들어섰다. 여직원이 웃는 얼굴로 다가와 무슨 일로 오셨느냐고 하며 담당자가 올 때까지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뜻밖의 친절에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우리 공무원들이 많이 친절해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특별한 배려는 너무도 의외의 것이었다. 나는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도 내가 받은 감동이랄까 충격을 잠시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 나 자신을 그의 자리에 놓아 보았다. 나라면 그 공무원처럼 생판 모르는 납세자에게 대납을 해줄 수 있을까.

‘납기가 모래까지구나. 억울하게 연체료를 내야 하겠네.’ 하는 생각은 할 수 있으리라. 아마 거기까지가 내 한계일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대납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고 가정해 봐도 나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할 것 같다. ‘일면식도 없는 납세자에게 내가 그토록 자상한 배려를 한다고 누가 표장장이라도 준대?’ 또 ‘대납해 준 돈을 차일피일 하면서 보내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갈 것이다.

그러고는 ‘남의 일에 신경 쓸 것 없어.’ 이렇게 나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관심을 꺼버리고 말 듯하다. 타인을 위한 작은 배려는 우리 일상에서 지키게 되는 예의나 친절 같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건물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때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서 잠시 문을 잡고 있다든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 나중에 타는 사람을 위해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는 따위의 사소한 배려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 공무원의 경우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그는 만에 하나 자기가 입게 될 손해조차 무릅쓰고 납세자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그런 배려를 기대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나무라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터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에게도 동물의 촉수처럼 ‘관심의 더듬이’가 있다. 그런데 그 더듬이가 하나뿐인 사람도 있고 여러 개가 있는 사람도 있다. 하나 밖에 갖지 못한 사람은 그의 더듬이가 작동할 수 있는 범위는 자기 가족과 친지 정도이다. 그러나 둘, 셋 있는 사람들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타인에게까지 관심이 가서 남의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내 능력은 더듬이 하나의 한계라고 생각하는데, 그 공무원은 얼마나 많은 더듬이를 갖고 있을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잠시 남에게 마음을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작은 관심을 갖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나 자신이 즐겁고 타인은 감동을 받게 된다. 게다가 전염성이 아주 강해서 내가 베푼 작은 배려는 또 다른 배려를 낳고, 나아가 더 큰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것은 윤활유와 같은 것이어서 우리 삶이 삐걱거리지 않고 원활하게 굴러가게 만든다. 배려하는 삶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살맛나게 한다. 세금을 대납해준 공무원을 찾아가서 차라도 한잔 나누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그에게서 받은 특별한 배려를 다른 많은 사람들과 나눈다면 그와 나누는 차 한 잔보다 더욱 향기롭지 않을까싶다.

작가 최 제 영

경기여고·서울대학교 졸업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이음새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 <그래도 오늘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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