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김영일 택시기사

군대 동기 때문에 잡은 운전대

저는 남쪽의 작은 도시 김천시 황금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자라면서 저는 부모의 후광으로 편히 공부를 했고 군대를 병장으로 제대했습니다. 군 생활 역시 남보다 군수처 행정병으로 고생 없이 마치고 사회생활은 중소기업 업체 설비단종회사 총무이사로 재직했습니다.

그런데 무역회사 법인을 설립한 뒤 운영하다가 뜻하지 않는 확장으로 어려움이 생겨 그만 폐업하고 말았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무렵 군대에서 함께 행정을 보았던 동기 친구가 갑자기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 말을 들어보니 친구 역시 자영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대건운수라는 택시회사에 취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보고 함께 근무하자고 권유하기에 “친구야, 말은 고맙지만 택시를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하니”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나도 택시자격증 교육받고 택시한다”고 하면서 저보고 이렇게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저는 친구가 하라는 대로 해서 택시 승무 할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전무가 “당신은 우리 회사에서 받을 수 없다”면서 불합격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제 이력서를 보니 운수종사자를 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회사경영을 했던 사람이 어떻게 택시 운전을 하겠냐는 것입니다. 입금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 노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등등 이런 저런 일이 생길까봐 불합격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을 때 그 일이 있은 지 1년이 지나고 대건운수회사에서 승무하라고 통보가 왔습니다. 통보를 받고 출근하니 일하라고 해 택시운전을 하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군대 친구가 계속 입사할 수 있도록 이야기 했고 결국 제가 승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승무 첫 출근일자가 1월 1일 양력 설날이었습니다. 저는 그 회사에서 3년 이상 근무하고 개인택시로 전환해 광림사 불자회, 즉 볍륜회에 가입해 지체장애우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후로 매년 봄 가을이 되면 이 친구들과 함께 사찰 견학을 가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 하지만 우리 부모님이 저를 장애 없이 키워주신 고마움에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게도 됐습니다.

또한 동네 어르신들에게 점심대접을 하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르신들이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질서유지 봉사, 식판에 밥 담기, 설거지 같은 일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범운전자로 월 5회 정도 근무를 하면서 아침 출근길 차량흐름이 원만히 진행되도록 지도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저는 티뉴스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 기자님과 함께 세상에 빛이 될 수 있는 미담이나 어려움과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마음으로 돕고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게 된 동기는 모두 개인택시를 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군대 동기인 친구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운전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봉사활동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은 이런 직장을 잘 선택했구나 합니다. 개인택시가 남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한다고 해도 개개인 한사람은 인격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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