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 성당에서 미사 도중 한바탕 웃는 소동이 일었다. 신부님의 유머 때문에. 바로 유머집에서 발췌한 신부님의 유머 때문이었다.

한 여성이 고백성사를 보려고 고백소에 들어왔다. 그녀는 한참 망설이다가 고백을 했다. 사제는 귀를 기울였다.

“신부님! 저는 거울을 볼 때 마다 제가 최고 미인이라고 생각을 하는 오만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제는 그녀의 미모가 궁금해서 고백소 안의 작은 문을 살짝 열고 그 여인을 엿 보았다.
신부님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자매님 그것은 죄가 아니라 착각입니다.” 위트가 있는 고백소의 풍경이다.

‘집에 가서 거울을 다시 한 번 보세요’라고 보속(참회의 기도)을 주었다는 꼬리말이 있었으면 아마도 미인의 착각은 더 완벽한 고백성사가 되었을 터인데 참 아쉽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가을을 느끼게 하듯, 신선한 유머는 잠시 엄숙한 성당 분위기를 와해시켰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미용실에서 40대의 여인이 의기당당하게 침을 튀기며 말을 늘어놓았다. 표정이 철없는 아이 같기도 하고, 때 묻지 않은 순진한 여인 같기도 하다. 같이 웃고 대꾸를 해주자 신이 더 난 듯 말을 해나갔다. 그것은 그녀가 앞으로 한 청년과 선 볼 총각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시골집에서 막내로 철없이 학교를 다니다가 대전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2학년 여름방학 때, 집에 오는 날 여인네들이 여럿이 모여 있었다. 한참 여인들이 수다를 떨고 있는 참에 그녀가 집에 들어선 것이다. “그 남자는 쪼그마하고 볼품도 없으면서 왜 여자를 그렇게 고르는 거야”하며 그 남자를 마구 비난하고 있었다. 못 듣는 척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엿듣고 있던 이 여학생은 그 남자에게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이튿날 그녀는 선을 보았다. 동네에서 눈 높기로 소문이 난 여학생이었다. 그 다음 날 그녀는 다방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해가 지도록 집에 들어오질 안았다. “이 남자 골려주고 올게요”하고 맛선 장소로 간 그녀가 진짜로 데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착각은 이랬다. 남자는 일찍 맞선 자리에 와서 앉아있었다. 인상도 좋았다. 앉아 있는 그의 키는 보통 사람이었다. 전혀 키 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하며 장난기로 따라다니다 보니 하루해가 지나갔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결국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구경하던 여인들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눈 높기로 소문난 그 처녀가 그렇게 조그만 애와 결혼을 한단 말이야?”라고 하며 그들의 결혼을 의아해 했다. 그리고 드디어 신혼여행을 하고 돌아온 날 “그게 인연이야. 잘 어울린다.” 하면서 이웃아주머니들이 두 사람을 쳐다보고 낄낄댄다.

왜 자꾸 웃지? 그녀는 무심결에 거울에 비친 남편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아니! 이 사람이 내 남편이야? 키가 너무 작네. 나보다 작아. 이게 어찌된 일이야.”라고 하며 하마터면 쓰러질 뻔 했다. 눈에 콩깍지라도 씌어졌던 것이 아닐까. 착각! 그녀는 엄청난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식을 낳았고, 지금 부부는 금슬이 좋다. 설마 그렇게 착각을 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정말 키는 보이지가 않았어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장난으로 만났고, 그 남자가 “참 미인이시네요.” 하고 띄워주는 첫말에 그녀는 착각했다고 한다.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여자들에게는 다 그런 속성이 있을 것이다. 남편들이여. 오늘 집에 들어가 아내에게 미인이라고 한 마디만 해봐라. 그 순간부터 무엇이 달라지는가를….

착각 속에서 맺어진 부부는 생각보다는 훨씬 더 잘산다. 또 이 부부의 착각만큼이나 고마운 착각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부의 연은 눈에 콩깍지가 씌어져야 성사 된다고 했던가.

나는 가끔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안양천을 걸으면서 시원한 바람과 공기를 마시면서 잡다한 일상을 털어낸다.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안양천길, 봄에는 삐죽삐죽 생기를 돋으며 잎을 틔우는 앙증스런 모습과 무더운 여름날에는 싱싱해서 삶의 의지를 맛본다.

가을 또한 우거진 억새와 갈대숲의 바람소리까지 나의 정서를 일깨워주면서 사색에 잠기게 한다. 자연의 정취에 일상의 피로를 맡기고,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즐기는 이들의 발걸음은 그래서 더욱 가벼워 보인다.

유유히 흐르는 안양천에는 지금 한창 백로가 대가족을 이루고 노닌다. 머지않아 겨울 철새 청둥오리와 원앙이 찾아와 먹이를 낚는 유희를 즐길 것이다. 때론 일상의 착각에서 헤매기도 하면서 철없이 달려온 나를 배려한 시간에 감사한다.

가을은 풍요롭다. 결실을 얻는 계절이다. 내가 물들인 색깔은 무슨 색일까. 나를 곱게 물들이고 싶었던 것도 착각이었을까? 질곡의 상처가 많은 단풍이 더 곱듯, 무더운 여름을 견딘 나의 가을은 그래도 고운 컬러이기를 기대해본다.

작가 조 한 순

방송대 국문과 졸업
월간 수필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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