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겪는 일 중 하나는, 그 나라는 무슨 일이 생기면 왜 그렇게 처리가 늦느냐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금방 되어 나올 것도 외국에서는 몇 시간 아니면 하루 늦게 되기 일쑤다. 우리나라의 ‘빨리 빨리’가 은근히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그래도 살기 좋은 곳”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외국인이 뽑은 ‘한국인들의 빨리 빨리 베스트 10’을 보면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들이 있다. ‘한국인들은 커피자판기에서 컵이 나오는 곳에 손을 넣고 기다린다’든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닫힘 버튼을 마구 누른다’, ‘웹사이트가 3초 안에 안 열리면 그냥 닫아 버린다’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이렇게 스피드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원유가 많이 생산되는 국가는 원유와 관련된 산업으로 발전한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 등이 그 같은 예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론엔 한계가 있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한국이 지금과 같은 성장을 이룬 점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부존자원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패러다임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국가다. 우리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더 빨리 발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 왔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삼성전자가 애플을 제치고 세계최대의 스마트폰 회사로 올라선 것은 스피드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가 급성장한 이유는 위기의식에 자극을 받아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스피드는 중소상인들이 모인 기존 산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대문 의류시장은 1960년대 말~1990년대 말 크게 성장했지만 그 이후 경제위기와 해외 저가 브랜드의 국내 진출로 어려움을 겪었다. 동대문 의류상인들은 먼저 수많은 의류 관련 업체들이 반경 1㎞ 내에 집중해 의류의 기획부터 생산, 그리고 판매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기업군(群)을 만들었다. 이러한 시도는 의류유통을 다른 어느 곳보다 빠르게 할 수 있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한류와 더불어 한국의 패션과 화장품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동대문 의류시장은 세계최대 패션시장 중 하나로 성장했다. 스피드라는 경쟁력을 기초로 해서 다시 일어선 것이다.

너무 스피드만 강조한 나머지 정확성을 등한시하면 사고가 일어난다. 천연자원이 거의 없고 인력 또한 변변치 못했던 싱가포르가 짧은 시간에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적극적인 대외개방과 사회의 투명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빨리 빨리’ 문화를 버릴 것이 아니라 ‘정확성이 수반되는 빨리 빨리’로 탈바꿈해야 한다. 한국의 경쟁력은 스피드를 기반으로 한 정확성이고 이 두 요소를 다 포함하는 개념이 바로 민첩성이다.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에서 평소에 빨랐던 토끼는 자신의 능력을 맹신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지만 한국은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다. 한국은 토끼처럼 빨리 뛰면서 거북이의 신중함과 정확함도 갖춰야 한다. 이러한 요소를 잘 배합한다면 한국은 빠르면서도 정확한 토끼가 돼 계속적인 발전을 이뤄나갈 수 있을 것이다.

편집국장 한 경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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