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권 박사

1982년 ~ 2014년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2014년 ~ 현  재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울K내과의원 원장
                        (사)싱겁게먹기실천연구회 이사

 

60대 Y씨는 2017년부터 콩팥 기능이 떨어져 치료를 받아오고 있습니다. 집 근처 병원부터 대학병원까지 다니면서 약도 먹었으나 콩팥 기능은 계속 나빠졌습니다. 몇 달 전에는 심장마비로 대학병원에 입원해 치료까지 받았습니다.

저에게 처음 진료받으러 왔을 때 Y씨의 콩팥 기능은 15 미만이었습니다. 콩팥 기능(GFR) 15 미만은 신장 투석을 받거나 콩팥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나빠졌음을 의미합니다.

Y씨의 콩팥 기능을 개선할 방법을 찾아보고 있습니다만,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의 사례는 몇 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너무 많은 약 복용 문제입니다. 그가 2021년 말, 한 달 동안 한 종합병원에 다니면서 처방전을 받아 약을 사 먹은 내역이 담긴 ‘조제 기록부’를 살펴보았습니다.

전립선비대증, 심장병, 류머티즘, 당뇨병, 콩팥병이 있는 그는 한 달간 비뇨의학과, 순환기내과, 류머티스내과, 내분비내과, 신장내과 등 5개 과의 진료를 받았습니다. 의사 5명이 Y씨에게 처방한 약물의 종류는 총 23종.

의사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인체 기관에 생긴 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약을 처방합니다. 예컨대 순환기내과 의사는 심장병, 신장내과 의사는 콩팥병 치료 약을 처방합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이미 기능이 떨어지고 있는 Y씨의 콩팥이 많은 약물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고민하고 판단한 의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콩팥을 진료하는 신장내과 의사는 본인의 처방전 외에 다른 의사의 처방까지 꼼꼼히 챙겨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한 달 동안 복용한 약으로 미뤄보건대, Y씨는 그 전부터 상당히 많은 종류의 약을 복용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누적돼 그의 콩팥 기능이 회복이 어려운 수준까지 악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학 전문가인 의사의 의료행위는 매우 독립적입니다. 따라서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료나 선후배 의사, 원장 등 누구도 진료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무척 세분화돼 있는 현대 의료의 특성상, 각각의 의사는 환자의 몸 전체가 아닌 개별 기관이나 조직에 집중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이 인체의 특정 기관이나 조직에 생긴 병은 고치더라도, 그 과정에서 다른 기관이나 몸 전체에 추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곤 합니다. 너무 많은 약 복용도 문제의 원인 중 하나입니다.

병원들도 이런 문제 발생을 막는 노력을 하고는 있습니다.

얼마 전 보도된 기사의 제목은 ‘“처방약 너무 많아요. 줄여주세요” 문자 받은 교수’였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가 병원장으로부터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물의 개수가 너무 많으니 줄이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보건당국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병원장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진료에 간섭하는 것 같아 유쾌하지 않다는 반응을 교수가 보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약을 몇 개나 복용하는 게 환자에게 ‘최적’인지를 판단하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특히 여러 가지 만성질환으로 장기간 약을 먹어야 할 경우는 더 복잡합니다. 약물 개수는 적을수록 좋지만, 너무 줄이면 질병 치료라는 목표에 달성할 수 없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면서도 약물 부작용이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데 우리 사회가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둘째 시사점은 ‘콩팥병-심장병(renal-cardio)’ 또는 ‘심장병-콩팥병(cardio-renal)’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콩팥병과 심혈관 질환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개념입니다.

콩팥 혈관이 망가졌다는 것은 다른 기관, 심장 혈관도 망가졌을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심혈관 질환이 있을 때 콩팥병 위험도 증가합니다.

5년 전부터 콩팥병을 앓아온 Y씨에게 작년에 심장마비가 찾아온 것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사건’이었습니다. 만성콩팥병 환자의 주된 사망 요인이 심혈관 질환이란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Y씨는 병원에도 나름대로 다녔고 약도 여러 개를 복용했습니다만, 예측됐던 심혈관 질환을 피하지 못했고, 콩팥 기능 악화도 막지 못했습니다.

Y씨와 같은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의사들은 물론 환자들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질병을 예방, 치료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예측 가능한 ‘나쁜 상황’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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