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재료는 요리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양념도 중요하고, 요리하는 방식과 정확한 레시피 역시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본이 되는 식재료입니다. 식재료의 상태에 따라 요리의 퀼리티가 결정이 되니까요. 우리 역시 앞으로 요리를 하게 될 불안이라는 주재료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재료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 덥석 요리를 하겠다고 달려들 수는 없으니까 말이죠.
불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이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마음은 크게 사고의 영역, 인지의 영역, 감정의 영역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먼저 사고의 영역은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영역에 문제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장애가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지의 영역은 지적기능, 즉 인간의 지식, 이해, 적용, 분석 등을 담당하는데요. 이 영역에 발생하는 대표적인 장애가 인지장애, 보통 치매라고 하는 병입니다. 마지막으로 감정의 영역이 있습니다. 감정의 영역은 느끼고, 감동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등 정서적인 반응을 담당하는데요. 이 영역에서 발생하는 장애가 바로 불안장애이고 그 하위에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안에 장애가 생겼다는 것은 마음의 영역 중 감정의 영역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불안과 관련한 다양한 글들을 쓰면서 느낀 것 하나가 있는데요. 보통 우리가 쉽게 말하는 ‘불안과 염려’라는 것은 좀 구분해서 적용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물론 인문학적인 관점으로요.
불안(不安)은 편안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내 마음이, 나의 몸이 편안하지 않아서 불편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편안으로 가기 위해서 몸부림을 칩니다. 그 사인이 바로 불안입니다. 반대로 염려(念慮)는 생각이 가득 찬 상태를 말합니다. 생각 염(念)에 생각 려(慮). 생각이 너무나 가득차서 생각이 생각을 계속해서 불러오는 상태를 말하죠.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각을 하고 사고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빠져나올 통로도 없이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으면 얼마나 힘이 들까요? 염려는 불안처럼 편안한 상태를 갈망하는 것보다는 생각자체에 함몰된 나의 정서적 상태입니다. 그러니 불안이 가진 순기능과는 전혀 상관이 없겠죠.
이렇게 불안과 염려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다루고, 요리하려고 하는 불안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요리의 주재료 말이죠. 불안은 편안하지 않은, 불편상태이고, 편안으로 가려고 하는 속성을 가진 마음의 상태, 감정의 상태라는 것까지 우리는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불안을 완전히 제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적합하게 잘 요리를 해서 내 입맛에 맞게, 내 체질에 맞게 적합한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가 중요하죠.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누가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서 산해진미가 되기도 하고 음식물쓰레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요리를 태하는 태도, 즉 마음가짐이 그래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요리사들은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더라도, 누군가를 위해 하는 요리에는 반드시 평가라는 것이 따라오게 되어있죠. 그래서 요리사는 요리를 하는 매순간 행복하면서도, 지속적인 불안함에 잠식되어 있기도 합니다. 평가라는 것은 항상 그렇게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죠. 그들은 이 불안함을 어떻게 넘어설까요?
저와 아주 가까운 셰프는 시간을 정해서 자신만을 위한 요리시간을 반드시 갖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기호, 취향, 식성, 사소한 버릇과 알레르기까지 모두 다 알고 있으니 그런 것들을 다 고려해서 요리를 합니다. 때로는 그럴듯하게, 때로는 아주 간단하게 자신만을 위해서 요리를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자존감을 높이기도 하는 거죠. 하지만 이 요리시간이 즐거운 이유는 절대 평가를 하지 않고, 사소한 실수나 웃어넘길 수 있는 자를 위한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는 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내가 나 스스로를 평가하고, 값을 매기고, 재단하기 시작하면 그 어디에서도 편안할 수 없겠죠?
불안은 편안하기 위한 사인입니다. 그 사인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우리 함께 불안을 요리해 봐요.

이시우 (작가 에반)
현, 컨설팅그룹 에반더피셔 CEO(교육, 콘텐츠)
불안, 분노, 우울 관련 에세이스트 및 강사
前) 방송통신인적자원개발위원회 사업총괄본부장
前)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양방향방송통신산업협의회 간사
前)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디지털마케팅 전문위원
前) ‘시티라이프’ 문화컬럼니스트
M-net,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MBC, KBS 등 방송다큐멘터리 및 예능프로그램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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