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DNA

도토리 키재기
도토리 키재기

시댁은 평균 여자 160cm 남자 170cm 이하다.
(그것도 아주 넉넉히 잡아서~~~)
시어머님의 며느리 희망사항은
그냥 시원시원 죽죽 뻗은 며느리였다.
특히 다리가 아주 긴 며느리.

반면 친정은 유전적으로 단신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42년생 동갑 부모님 키가 180cm , 167cm 셨고
조부모대로 올라가면
외조부 190cm, 조부,증조부 일단 180cm가 넘으셨다고 한다.
내 자매들은 170cm에 육박한 높이였고
별명이 학다리였던 남동생은 185cm다.
뭐 일가 사촌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 눈깔은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어지간한 남자들은 우리집 남자들보다 작은 것 뿐
160cm 대와 170cm 초반 중반 후반의 차이를
인지 하지 못하는 심각한 병증이 있었음에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이십대를 보냈다.

사진출처 STOVE SEYA '키차이'
사진출처 STOVE SEYA '키차이'

그런데 문제 있는 눈깔에 콩깍지까지 씌워지면?
인사불성, 혼수상태급이라고 보면 된다.
남편의 키는 170센티가 안된다.
(박박 우긴 본인 피셜 168cm이다.)
처음 만났을때 그냥 우리집 남자들보다 작구나
딱 이것 뿐,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친정에 첫 인사를 드리러 왔을 때
어머니는 어릴 때 무슨 문제때문에 키가 안큰건지
나에게 따로 물었었다.(영양실조였었니? 라고)
형부 184cm, 제부가 189cm 인데
남편을 처음 본 어머니의 의구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격렬히 반대하셨다.(당신보다 작다고..^^)
그래도 아버지의 허락과 나름 세기의 사랑으로
씩씩하게 결혼은 강행됐었다.

그런데 결혼 3년차,
내 눈깔의 콩깍지가 임신하면서 툭 떨어진다.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남동생과 남편이 같이 있는데
다리 길이가... 다리 길이가... 다리 길이가.....
그날 밤 자고 있는 남편의 다리 길이를 슬그머니 쟀다.
한뼘 두뼘 세뼘 뭐 그리고 조금 더
금방 끝나는 다리 길이에
평생 몰랐던 좌절감이 밀려 왔다.
내 남편은 호빗이라도 상관 없었는데
내 아이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그때부터 태교는 주기도문 외우듯
외삼촌 키 닮은 숨어 있는 유전자 깨우라고 읊어 댔고
멸치 육수 끓여서 한 대접씩 마시고
우유든 뭐든 뼈에 좋다는건 다 먹어댔다.

산부인과 의사생활 20년만에
태아 다리 길이 재 달라는 산모는
처음이라는 선생님의 말씀도 상관없이
유전을 무시한 태아 다리 늘리기에 집중했다.
2000년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일.
59cm로 아들이 태어났다.
당시 신생아 평균이 48cm~52cm.
간호사 분들이 신생아계의 서장훈이라고 말했었다.
할렐루야~~~~~

나는 자만했다. 그리고 오만했다.
나의 노력이 유전을 이겨 냈다라는 위풍당당
그런 자만감으로 59cm의 아들을 데리고 퇴원 했었다.
하지만 내 아들 역시 유전의 힘에서 벗어 날 수 없음을
그 힘에 굴복 할 수 밖에 없음을 점점 깨닫게 됐다.
이제 군대에 들어간 아들한테 입대한 김에
많이도 말고 2cm만 더 키워 오라고 했더니
군대는 기적을 일으키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대한민국 7사단 사단장은 예수님이 아니래나 뭐래나.

내 남편이야 자기보다 훨씬 큰 아들을 보며
나름 흐뭇하겠지만
친정 조카들중에서 제일 작은 내 아들을 보면
아이 낳고 59cm로 낳았다고 자랑할 때
언니가 했던 촌철살인 팩트 폭행하던
한마디가 늘 생각난다.

"대따 마~
초장 끗발 개 끗발이다. 잘 키아바라!!"

언니와 통화한 그날 이후
두고보라던 절치부심도
이를 북북 갈아 댔던 와신상담도
DNA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하아~~~~~~~~~ 그노무 DNA!!!

글쓴이 : 오월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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