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을 켜 놓고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오징어 게임”을 보던 것이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쌀쌀하다 못해 오금이 저리는 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멋쟁이들은 설레기 시작합니다. “재킷”을 입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죠.

패션을 논할 때, 최소한 대한민국 한정으로 결코 바뀌지 않는 한 가지의 공식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여성들은 그 어떤 옷차림 보다 멋진 정장 차림의 남성을 매력적이라고 느낀다.”라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불변의 법칙.

아무리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라 해도, 또 “깔끔한 흰 티셔츠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라 해도, 근사한 슈트 차림을 당할 수는 없죠.

그런데 궁금합니다.

도대체 왜 여성들은 슈트 차림의, 재킷을 입은 남성을 매력적이라고 느낄까요? 재킷에는 무슨 마법의 가루라도 뿌려져 있는 것일까요?

정답은 어이없게도 “네”입니다.

재킷에는 여러분들이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몇 가지의 “만능키”가 숨어 있습니다.

우선 재킷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도록 할까요?

재킷은 르네상스 시대 즈음부터 유럽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당시의 재킷 형태는 현대에 비해 훨씬 몸에 꼭 맞는 형태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의 의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러니까 앞여밈이 있고 컬러(Collar, 깃)가 달린 형태의 재킷은 훨씬 이후인 1800년대 즈음, 영국 해군 제복에서 유래했습니다.

재킷의 만능키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창하게 인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시대를 불문하고 남성들은 그들의 신체적 강인함을 매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사람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사람의 몸에서 가장 큰 부분은 바로 가슴 부위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인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남성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또 같은 수컷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상체를 굉장히 크게 보이려고 노력하곤 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에서도 남성들은 가슴과 어깨 부분을 최대한 크고 화려하게 보일 수 있는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과시했고, 그런 전통은 요즘 군복에서도 가슴에 과도하게 많은 수의 배지를 달거나 애플릿(Epaulette, 견장) 등을 다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지요.

재킷의 “만능키”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재킷은 다른 종류의 남성 의류들, 예를 들면 점퍼나 파카, 카디건이나 셔츠와는 그 구조부터가 다른데요, 크게 두 가지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재킷의 어깨에는 패드가 들어가지요. 패드를 덧댐으로 인해 어깨 라인이 실제 어깨라인과는 달리 직선으로 표현이 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라인 역시 직각에 가깝게 절도 있는 라인이 만들어지지요. 스웨터를 입으면 몸의 라인을 따라 옷의 실루엣이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재킷의 어깨라인은 의도적으로 딱딱하고 넓어 보이게 만들어진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두 번째 비밀은 바로 가슴 부위에 있습니다.

사진에서처럼 겉감과 안감 중간에는 “심지(Interfacing)”이라고 부르는 별개의 원단이 들어가는데, 심지를 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가슴을 크고 탄탄해 보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진에서 가슴부터

허리 부분까지는 한 겹을 따로 덧대놓은 것을 보실 수 있는데, 이 작업이 바로 재킷의 두 번째 비밀이자, 재킷을 입으면 멋있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즉, 재킷은 “입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갑옷처럼 몸 위에 “씌우는”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티셔츠나 스웨터처럼 몸의 라인을 타고 가는 옷이 아니라, 이미 견고하게 만들어진 옷 안에 몸을 끼워 넣는다는 느낌이랄까요? 비교하자면 현대판 갑옷과도 같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재킷에 대한 개념에 대한 이야기였고, 이제부터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여러분이 앞으로 재킷을 구입하실 때, 올바른 재킷을 선택하기 위한 몇 가지의 중요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이 그저 할인매장에 걸려있는, 가장 싼 검은색 혹은 회색 재킷이면 OK라는 태도를 가진 분이 아니라면, 재킷에 대해서 복잡하게 쉐빌 로우니 마니카 카마치아니 하는 이야기는 뒤로하고, 여기서 알려드리는 세 가지에 대한 자신의 취향만 확고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1. 라펠(Lapel)의 종류
2. 단추의 개수와 V존과의 상관관계
3. 벤트(Vent)의 종류
 

간단하죠?

자, 우선 라펠(Lapel)에 대해 이야기해 보지요!
라펠은 재킷의 얼굴과도 같은, 재킷의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펠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만 염두에 두시면 되는데요, 1) 라펠 디자인과 너비 2) 골지 라인의 기울기입니다.

우선, 라펠이란, 재킷의 앞부분에 컬러와 함께 접히는 부분을 뜻합니다.

흔히 “카라”라고 잘못 알고 계시는, 뒷목과 닿는 부분을 컬러(Collar)라고 하고, 컬러와 라펠은 이어지는데 이 둘이 만나는 지점을 “골지(Gorge)”라고 부르며, 컬러와 라펠이 접하는 부분의 선을 “골지 라인”이라고 합니다.

라펠은 형태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존재하지만, 크게 나누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태가 왼쪽에 있는 나치 라펠(혹은 Notched Lapel)이고, 라펠 끝부분이 위로 향한 형태의 라펠은 피크 라펠(혹은 Peaked Lapel)이라 부르며, 컬러와 라펠이 붙어있는 형태를 숄 라펠(혹은 Shawl Collar)이라고 합니다.

나치 라펠은 가장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맛이 나고, 숄 라펠 쪽으로 갈수록 일반적인 재킷보다는 턱시도에 가까운 느낌을 주지요.

어떤 형태의 라펠을 선택하는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입니다.

다만, 라펠의 너비는 취향의 영역인 동시에 특정한 메시지를 주기도 하는데요, 일반적으로는 라펠의 폭이 넓을수록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며 성숙한(다르게 표현하자면 “노땅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제는 잊혀진 이름인 “도널드 트럼프”는 항상 대단히 넓은 라펠 디자인을 선택했었는데, 당연히 매우 의도적인 선택이었겠죠.

형… 어디있는고얏!
형… 어디있는고얏!

20년 전, 스키니진을 크게 성공시켰던 디올 옴므(Dior Homme)는 반대로 대단히 좁은 라펠을 선보였었죠.
이 둘을 비교해 보면, 라펠의 폭이 좁을수록 젊고 샤프한 느낌을 주고, 폭이 넓을수록 클래식하고 성숙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슈는 골지 라인, 즉 컬러와 라펠이 만나는 선의 기울기인데요, 이 기울기는 “ㅣ”에 가까울수록, 즉 많이 쳐져 있을수록 클래식한(=늙어 보인다는) 느낌이, “ㅡ”에 가까울수록 도시적인 맛을 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라펠의 형태와 폭, 그리고 골지 라인의 기울기에 따라 재킷의 개성이 달라진다는 점이지요.

두 번째로는 단추의 개수와 V존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재킷의 단추는 1개, 2개, 혹은 3개의 공식을 따릅니다.

단추를 채울 때 생기는 V자 형태를 V-존(V-Zone)이라고 합니다.

사진의 왼쪽부터 원버튼, 투버튼, 쓰리버튼 재킷입니다. 단추가 많아질수록 목부터 V존 까지의 길이는 짧아지겠지요. 그리고 이 길이가 길수록 셔츠의 많은 부분이 보여지고 클래식한 맛이 나고, 짧을수록 캐주얼한 맛이 나는 대신, 시원시원한 맛보다는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내지요.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중간인 투버튼 재킷을 가장 많이 선택합니다만, 예를 들어 목이 짧거나 키가 작은 분의 경우에 원버튼 재킷은 길쭉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체형의 단점을 가려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쓰리버튼 재킷의 경우엔 살집이 있는 분이 입는다면 더욱 답답해 보이겠지만, 마른 체형의 분인 경우엔 반대로 상체가 조금 더 두꺼워 보이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벤트(Vent)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벤트는 갈라진 곳을 의미하며 재킷에서 벤트라고 부르는 곳은 손목의 단추 부분과 허리에서 엉덩이까지의 가름을 뜻하는데, 여기서 이야기할 부분은 엉덩이를 덮는 부분입니다.

벤트는 싱글 벤트(single Vent)와 더블 벤트(Double Vent), 그리고 가름이 없이 막혀있는 노벤트(No Vent)로 나눌 수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재킷의 디자인적인 요소들은 모두 가슴 쪽과 어깨 부분에 모여있고, 뒷부분에는 사실은 벤트 정도를 제외하면 디자인 요소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따라서 벤트가 있느냐 없느냐, 1개이냐 2개이냐는 사실은 재킷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는 아니지만, 반대로 재킷의 뒷부분에서 유일하게 눈길이 가는 부분이다 보니 나름대로의 존재감은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선 벤트는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상체를 움직일 때 활동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능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가름이 없는 No Vent는 몸의 움직임이 크지 않은 턱시도에서만 활용됩니다.

가운데 가름이 있는 싱글 벤트는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재킷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캐주얼 재킷에 주로 사용됩니다. 사실은 더블 벤트에 비해 딱히 미적인 차원에서나 기능적인 차원에서나 그다지 큰 메리트를 갖는 형태가 아닌데다, 사진에서처럼 벌어졌을 때 별로 아름답지 않은 주름이 생기곤 해서 “굳이”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면 선택할 필요는 없어 보이고, 그 외의 거의 모든 재킷은 더블 벤트로 만들어집니다.

물론 이 세 가지 큰 줄기 외에도 재킷에 대해서 파고들자면 엄청 깊게 들어가 볼 수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 정도를 유념하고 재킷을 입어보신다면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재킷의 진정한 맛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재킷은 티셔츠처럼 입다 보면 대충 몸의 실루엣에 맞게 변하거나 좀 크게 입어도 나름대로의 맛이 나는 종류의 옷이 아니라, 몸 위에 덮어 씌우다시피 입는 옷이기 때문에 단순히 브랜드만 보고 선택하거나 원단이나 컬러가 마음에 든다고 덥석 선택하기보다는, 직접 입어보고 선택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특히 미국 브랜드의 경우엔 상체가 한국인에 비해 훨씬 두꺼운 기준에 맞춰 만들어지다 보니, 보기에는 예쁘지만 입고 나면 허리는 맞는데 어깨나 가슴이 유독 벙벙하게 남아서 마치 할아버지 옷을 걸친 것 같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입어봐야 합니다. 오히려 이탈리아 브랜드의 경우엔 팔 길이나 어깨너비 등이 한국인과 차이가 크지 않으니 참고하시길 바라고, 길거리의 많은 남성 직장인 분들이 너무 트렌디하거나 너무 낡거나 촌스러운 재킷 차림으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곤 합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조금만 더 내 몸을 사랑하면서 내 몸에 잘 맞는 멋진 재킷을 입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촌스러운 아저씨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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