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박사 / 전 교통연구원 원장 /전 KAIST 한글공학연구소 소장

신부용 공학박사 전 교통연구원 원장 /전 KAIST 한글공학연구소 소장
신부용 공학박사 전 교통연구원 원장 /전 KAIST 한글공학연구소 소장

한글 세계화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왜 일까? 한글은 배우기 쉽고 어떤 발음이라도 정확히 표기할 수 있으니 문자가 없는 나라에서 쓰도록 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더 나아가서 문자가 배우기 어려워 문맹이 많은 나라들도 한글을 도입하여 문맹을 퇴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세종대왕도 이 때문에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것이다.

이는 물론 옳은 생각이지만 상대국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이다. 글자가 없는 나라는 글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글자를 가진 나라에서는 더 좋다는 이유로 남의 글자를 선뜻 받아드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세종대왕의 신하들도 훈민정음을 반대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한글 세계화가 뜻은 좋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하여 반드시 추진해야만 하는 우리 민족의 숙제이다. 그만큼 가능성이 있고 또 기대효가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뿐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우선 한글이 왜 훌륭한 문자인지 우리부터 확신을 가져야 한다. 놀랍게도 우리는 무조건 세계 최고라고만 하지 왜 최고인지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얼마 전 작고한 한글 운동가 한 분은 사비를 털어 ‘세계 문자 올림픽’을 두 번이나 개최하고 여러 나라의 대표들을 모아 자국의 문자들을 상호 비교하도록 하였다. 결과는 두 번 다 한글이 1위였다. 그러나 이 행사는 국내에서조차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잊혀지고 말았다.

한글이 세계 최고 문자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면 거창한 행사가 필요하지 않다.

문자란 기본적으로 말을 표기하는 도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자가 가장 효율적으로 말을 표기하는지 겨루어 보면 된다. 이는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여 예를 들어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을 받아 쓸 수 있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비교해 보면 판단할 수 있다. 한글은 자모 24자만 배우면 그 자리에서 받아 쓸 수 있으므로 2,3일이면 된다. 영어라면 알파벳 26자를 다 배웠다 하더라도 love 나 mother의 스펠을 모르면 받아쓰지 못한다. 중국어는 한자가 배우기 어려워 더 오래 걸릴 것이며 다른 문자들도 한글을 이길 글자는 없을 것이다. 역시 한글은 확실히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이 특별한 것은 말의 발음(소리)을 표기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글은 글자마다 고유의소리(음가)가 있고 이 글자들을 나열하여 소리를 표기하게 된다. 이에 비해 다른 언어, 예컨대 영어의 알파벳은 고유의 소리가 없다. 예를 들어 c 자는 ㅋ 발음이 나기도 하고 ㅅ 혹은 ㅊ 발음도 난다. 따라서 글자로 소리를 표기하지 못하고 글자가 모여 단어를 이루면 비로소 발음이 부여된다. 그러나 영어도 결국은 소리이므로 한글을 써서 그 소리를 표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I love mother 는 ‘아이 ᄙᅥ브 마더’ 라고 쓰면 되고 중국어라면 我爱妈妈 대신 ‘워 아이 마마’ 라고 쓰면 된다. 이렇게 한글을 쓰면 단어의 스펠이나 한자를 몰라도 된다.

그러나 아직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어주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즉 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어떻게 가르친단 말인가? 한글이 정말 훌륭하다면 당연히 방법이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물건인데 팔지 못한다면 그건 장사할 줄을 모르는 것이지 물건의 탓이 아니다.

한글을 직접 외국에 퍼뜨리는 것이 어렵다면 한글을 응용한 기술을 수출하면 된다.

한글은 글자이기 이전에 소리를 도형화(圖形化)하는 과학기술이다. 마치 소리를 음파로 저장하는 녹음기와 대등한 기술이다. 녹음기가 어떤 나라에서도 사용되듯 한글도 언어에 구애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녹음기는 스마트폰 등 모든 컴퓨터에 탑재되어 세상에 100억대도 넘게 퍼져있다. 한글이 녹음기 기능을 대행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그 응용기술은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한글의 소리표기 기능을 이용하는 기술로 외국어 학습모델을 생각할 수 있다.

그중에서 한글을 이용한 중국어 학습모델은 가장 성공 가능성이 클 것이라 예상된다.

중국어는 사실상 한글세계화에 지름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중국어는 영어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이며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어 중국어 수요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어는 워낙 배우기 어려운 언어이어서 중국인을 제외하면 배울 엄두조차 못낸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우리말은 중국어와 70%가량의 어휘를 공유하고 있으며 우리 글은 중국어의 발음을 쉽고 정확하게 표기해 준다. 중국인들이 쓰고 있는 로마자 병음에 비하면 한글은 그야말로 구세주이다. 예를 들어 妻子와 刺激를 로마자 병음으로 qīzi 와 cìjī 로 표기하는데 실제발음은 각각 치이즈와 츠찌이 이다. qī는 치이로 cì는 츠로 읽어야 하니 얼마나 혼동스러운가?

중국어로는 글자의 뜻을 설명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위에서 본 妻자를 우리는 ‘아내 처’ 라 하여 즉시 뜻을 알게 되는데 중국인들은 男子的配偶 라고 설명해야 하니 설명이 더 어려워 중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뜻을 잘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이런 이유 등으로 우리는 중국어를 중국인보다도 빨리 배울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두가지 중요한 사실에 도달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어를 배워 세계 중국어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과, 둘째, 한글로 중국어를 배우는 모델을 개발하여 이를 세계에 전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중국인보다 빨리 배우는 신한어학습법’과 한글로 찾아 볼 수 있는 중국어 사전, ‘중한영 CEK 입체사전’을 내 놓은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은 한글이 중국어 발음을 제대로 표기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애석하게도 지금 한글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어에도 영어처럼 f 발음이 있고 r과 l발음이 구별된다. 그리고 권설음이라는 우리가 안 쓰는 ‘혀를 굴리는’ 발음이 있다. 따라서 이 문제부터 해결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기 문제는 훈민정음의 도움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그 결과로 얻어질 표기법은 세계 문자가 될 대 과업이어서 조직적이고도 전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이 개인적 열정을 바쳤지만 이루지 못한 이유이다. 앞으로도 국가가 아니라면 최소한 지자체 하나라도 열정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중요한 과업인 것이다. 이 세기적인 과업이 반드시 이루어져 세종대왕의 뜻이 온 누리에 펼쳐지기를 두손모아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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