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Devil wears Prada”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저널리스트로서 일자리를 찾던 주인공 앤드리아가 우연히(?) 패션 잡지사에 취업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여러 에피소드를 다룬 2006년의 영화입니다. 패션 매거진 업계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영화 내내 화려한 패션업계의 겉모습은 물론, 그 화려함 뒤에 감춰진 지옥 같은 현장의 모습도 훔쳐볼 수 있는 영화지요.

영화 속 한 장면.
영화 속 한 장면.

화보 촬영을 위해 옷과 액세서리들을 잔뜩 걸어 놓고 가장 잘 어울리는 푸른색 벨트를 찾기 위해 심각하고 격렬하게 의견을 나누는 담당자들을 보고 있던 주인공 앤디는 혼자 피식 웃습니다. 그리고 앤디의 웃는 모습을 심기가 불편한 편집장 미란다가 보게 되지요.

미란다: 뭐가 웃기지?

앤디: 어, 아니, 아니요. 그러니까… 제 눈에는 지금 고르고 있는 그 벨트들이 제 눈에는 전부 “똑같은 파란색”으로 보이거든요. 뭐… 저는 지금 이런 “것”들을 배우고 있는 중이니까요.

특별히 문제될 것 없어 보이는 앤디의 이 한마디에 미란다의 눈에는 불꽃이 타오릅니다.

미란다: 이런 “것”들이라고? 오, 그래. 알겠네. 너는 지금 이 상황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나 보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넌 사람들에게 “뭐, 난 뭐 내 몸에 뭘 걸치는지 따위에는 별 관심 없어.”라는 태도를 보이고 싶어서 옷장을 열고 그 퉁퉁하고 촌스러운 “파란” 스웨터를 골라 입었겠지. (마침 앤디는 푸른 스웨터를 입고 있습니다.)

그런데 네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그냥 “파란색” 스웨터가 아니야. 그건 옥색(Turquoise)도 아니고, 제비꽃색(Lapis)도 아니고, 그건 사실 세룰리안 블루(Cerulean blue)지.

물론 너는 당연히 전혀 모르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2002년에 오스카 델 라 렌타(Oscar de la Renta: 미국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는 세룰리안 블루만 이루어진 컬렉션을 발표했었지. 그 이후에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도 세룰리안 블루의 밀리터리 재킷을 선보였고. 그러자 다음 시즌엔 8명의 다른 디자이너들이 세룰리안 블루를 들고 나왔지. 당연히 백화점엔 세룰리안 컬러가 깔리게 되었고, 결국 마지막으로 끔찍한 “캐주얼 코너”까지 흘러 들어갔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너는 그런 곳에서 재고 정리 세일 때 그 옷을 건졌을 것이고.

그러니까, 네가 선택한 그 “파란색”은 바로 수백만 달러의 자본과 셀 수 없이 많은 패션업계의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인데, 우습지 않니? 결국 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네가 그 스웨터를 고르게 되었음에도 너는 지금 네 선택이 패션업계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말이지.

물론 미란다의 표현은 다소 과격하고 공격적이며 다소 영화적 비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패션 산업의 매커니즘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컬렉션을 통해 “비전”과 “스타일”을 제시하지요. 때론 과격하게, 또 과장되고 왜곡된 형태로 말이죠. 그리고 그 새로운 “것”들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대중에 알려지고 받아들여집니다.

혹시 패션쇼에 등장하는 괴상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의상들을 보면서 ‘아니, 저런 옷을 도대체 누가 입는다는 거지? 패션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네…’라며 혀를 끌끌 찬 기억이 있으신가요?

              Gareth Pugh 2007년 컬렉션 중                         Walter Van Beirendonck 2020년 컬렉션 중
              Gareth Pugh 2007년 컬렉션 중                         Walter Van Beirendonck 2020년 컬렉션 중

모터쇼에서 자동차 업체들이 선보이는 “컨셉트 카(Concept Car)”들은 지금 당장 팔기 위한 것들이 아니라, 자기들의 기술력과 디자인의 방향성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지요. 

대표적인 예로 1992년 현대자동차가 컨셉트카로 선보인 HCD-1이 4년 후인 1996년 “티뷰론”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면서 어떻게 “현실화”가 되었는가를 보면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합니다. 

“패션쇼”라고 흔히 알려져 있는 디자이너들의 “Collection”은, 당장 다음 시즌에 판매할 옷들을 선보이는 것이 물론 가장 중요한 목적이지만, 동시에 한 디자이너 혹은 브랜드의 비전, 그리고 정체성을 보여주는 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패션을 단순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럭셔리 브랜드로 처바르고 돈자랑을 일삼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일종의 예술 행위라고 여기신다면, 백화점 명품관이나 들락거릴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도시에서 수없이 열리는 “패션위크”에도 관심을 갖고 어떤 브랜드가 이번 시즌에 어떤 컬러를, 어떤 실루엣을 선보이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 지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떨까요?

혹시 패션이 난해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어쩌면 아무 노력도 없이 감성을 얻으려고 하는 당신의 태도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항상 노력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어째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에 열광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고 가사를 음미해보고, 팬클럽인 아미들의 의견도 읽어봐야 할 겁니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취미로 커피나 와인을 즐기고 싶어도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일 겁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무식하면 용감한 법입니다. 공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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