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 2014년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2014년 ~ 현  재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울K내과의원 원장
                        (사)싱겁게먹기실천연구회 이사

40대 P씨는 건강검진에서 콩팥 기능이 나빠졌다는 말을 듣고 진료 받으러 왔습니다. 그의 몸 상태는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콩팥 기능을 나타내는 사구체여과율은 56mL/분이었습니다. 사구체여과율이 60mL/분 이하인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콩팥병으로 진단합니다.
혈압은 184/120mmHg로 중증 고혈압이었고, 중성지방은 368mg/dL로 일반적 정상 기준(150mg/dL)의 두 배를 훌쩍 넘었습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지방간도 심했습니다.
하루 소금 섭취량은 12g을 넘었고, 운동량은 일주일에 1시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키 171cm, 체중 88kg, 체질량 지수(BMI) 30으로 비만이었습니다.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BMI는 18.5~24.9는 정상, 25~29는 과체중, 30~34는 비만, 35 이상은 고도비만으로 분류합니다.

 

P씨는 전형적 대사증후군 환자였습니다. 혈압약과 콜레스테롤 저하제, 아스피린 등을 처방해주면서 체중 감량을 위한 생활습관 교정을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이를 위해 소금 섭취 줄이기, 음식 양 30% 줄이기, 하루 1시간 이상 걷기 실천을 주문했습니다.
‘체중과의 전쟁’ 시작 후 2개월 동안 체중 2kg을 줄였으나 더 줄이지는 못했습니다. 체중이 86kg으로 약간 줄면서 체질량 지수는 30에서 29로 낮아졌지만, 대사증후군은 별로 변화가 없었습니다.
대사증후군의 지표인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의 변화를 실감하려면 적어도 3.5kg은 감량해야 합니다.
P씨는 애쓰는데도 체중이 줄지 않아 힘들어 했습니다.
체중 감량이 불가능한 경우 약물 용량을 높이면 혈압이나 중성지방 수치를 개선할 수는 있지만, 과체중이나 비만을 그대로 둔 채 고용량 약물을 오래 복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약을 복용하면서 체중을 정상으로 만드는 노력을 반드시 함께 해야 합니다.
문제는 결심만으로는 체중감량에 성공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체중을 3.5kg 이상 줄이는 게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가 수척해진 얼굴로 진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영문을 묻자 회식을 마친 뒤 3~4일간 고열을 동반한 심한 설사를 했다고 했습니다. 하루 10회 이상 설사를 했고, 복통과 두통에도 시달렸다고 합니다. 노로 바이러스 등에 의한 장염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설사와 복통이 심해 음식은커녕 혈압약도 먹지 못했다고 했는데도 그의 혈압은 103/66mmHg로 낮게 나왔습니다.
체중은 79kg으로 그 전보다 7kg 줄어 있었습니다. 체중이 급감한 주된 원인은 체액과 근육의 감소입니다. 심한 설사를 하면 혈액 속의 혈장, 그리고 세포 사이의 물, 세포 안의 물 등이 빠져나갑니다. 혈장의 주 성분도 물입니다. 인체의 약 60%를 이루고 있는 물의 일부가 빠지면서 탈수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혈관 내 등 몸 곳곳에 쌓여있던 소금도 체액과 함께 빠져나갑니다. 이어 근육까지 빠지면서 체중이 줄었고, 이런 요인들이 겹치면서 혈압 약을 먹지 않아도 혈압이 뚝 떨어진 것입니다.
설사가 멎고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면 체중도 증가하고 혈압(수축기)도 130~140mmHg 이상으로 다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P씨의 사례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체중 감량이 혈압 등에 미치는 직접적 효과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의도하지 않았던 설사가 체중감량의 효과를 생생하게 드러내 주었습니다.

 

의사가 체중 감량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환자가 실감하지 못하면 체중 조절에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체중 감소로 혈압이 어떻게 떨어지는지를 환자가 눈으로 직접 봐야 운동과 칼로리 줄이기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심한 설사를 해서라도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설사 유발 성분이나 이뇨제 성분을 넣은 불법 다이어트 식품들이 적발돼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체중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사증후군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더 심각한 건강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부작용 없이 체중을 20% 줄여주는 치료제의 3상 임상시험에 성공했다는 논문이 최근 의학저널에 발표됐습니다만, 약효와 안전성이 확실하게 증명되려면 추가 연구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정공법’만이 적정 체중으로 되돌리고 건강을 되찾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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