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학교도 공교육? 방과후 강사분들의 입장을 들어봅니다.

 

교육의 가치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2000년대 초반. 고등학교 수업을 한 적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똥통학교였습니다. 주변에서 공부 제일 못하는 애들만 온다는 학교입니다. 다행인 건 그나마 그중에 풍물반은 나름 착실한 애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수업이 수월한건 아니었지만요.

그중에 방황하던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학업은 물론 뭐 하나 제대로 정을 붙이지 못하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며칠씩 가출하거나 술 먹고 길바닥에서 뒹굴고 쌈질하고 주변 시끄럽게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부모도 담임도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고 흘려들은 얘기가 이 정도니 사실 더 심각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던 그 친구가 풍물반을 만나면서 확 변했습니다. 악기를 칠 때면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었습니다. 약간 게슴치레한 눈빛에 악기를 치는 모습이 어찌 그리 빠져드는지 가르치는 저도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사람이 이토록 열정적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나름 전문가라는 나도 배울점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렇게 풍물에 열정을 쏟으면서 학업이나 일상생활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말썽을 피우는 일이 거의 없어졌고, 학업도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그러더니 졸업할 무렵 결국 수도권의 어느 대학에 진학까지 했습니다.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대학이었고 수능점수보다는 수상실적 봉사점수 같은 가산점이 작용한 것이지만 그래도 학업과는 전혀 딴 세상에 살던 친구가 여기까지 했다는 게 어딘가요. 그 뒤에도 소식을 간간히 들었는데 그 이름없던 작은 대학이 서울의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한 대학교에 합병됐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사실이면 그 친구는 졸지에 이른바 명문대생이 된 셈입니다.

방과후학교가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비슷한 사례를 저는 여러 번 봤습니다. 교과수업에 정을 붙이지 못하던 아이들이 방과후에 신명나게 임하기도 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방과후학교를 통해 진로와 전공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교과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방과후 교실로 달려오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방과후학교 강사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과후학교의 교육적 가치를 어찌 낮다고 할 수 있을까요. 교과수업에 비해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 가치를 가늠할 잣대가 있기는 한 것일까요. 그런데도 방과후학교는 늘 보잘것없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학교가 무슨 영리기업인 것처럼 생산성이 다르다고도 말합니다.

 

방과후학교로 왜 학교가 힘들까요

교과수업 이외의 특별한 과목 교육의 필요성은 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언어, 수리, 체육 등을 담은 교과수업과 별도로 개인 또는 집단 특성에 필요한 예체능, 특기, 진로, 적성 등의 교육 역시 꼭 필요하죠. 4차 산업혁명, 융합과 신재생의 시대 등 시대적 흐름을 어디서든 많이 이야기하는 것만 보더라도 교과 일변도의 정주행식 교육보다는 다양한 갈래의 교육의 필요성은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담당하는 방과후학교는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근거는 없지만 웬만한 모든 학교들이 하고 있습니다. 근거가 없는데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육적으로도 수요적으로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죠. 어느 날 갑자기 교장의 지시로 방과후학교를 일체 운영하지 않는다고 선언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요. 강사들도 날벼락을 맞게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혼란스러울 것이고, 학부모들이 난리가 날 것입니다. 교육청에도 민원이 빗발쳐 난감해할 것이고 학운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만 상상해 보다라도 방과후학교가 학교에 없어서는 안되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방과후학교 이전에도 비슷한 것은 늘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80년대에도 특별활동, CA가 있었고 90년대에도 특기적성교육이나 동아리 등이 늘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방과후학교라는 이름으로 진화해 지금까지 왔습니다. 방과후학교 이전에 특별활동, 특기적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할 때는 교사들의 주도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반을 직접 맡아 지도하거나, 강사가 가르치더라도 적극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 함께 이끄는 식입니다. 그러던 것이 방과후학교라는 복잡한 체계가 되면서 주로 강사가 오롯이 지도하고 학교는 운영과 관리를 맡아 하는 식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가 할 일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지금처럼 막중한 행정업무 부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건 교사나 강사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 때문입니다. 성범죄나 아동학대 관련 법률이 강화되면서 강사들의 전력 조회를 하는 절차가 생겼고, 노동관계법이 강화되면서 선정 절차나 계약서 작성 요건도 까다로와졌고 관리도 복잡해졌습니다. 학부모들도 제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학교자치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학운위에서의 절차라든가 수강료 수납과 환불 등의 까다로운 절차도 생겼습니다. 부패와 비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방계약법 등이 적용되면서 업체위탁의 입찰과 계약 절차도 까다로와졌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절차로 관리하는 교사들과 실무자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저도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강사들이 요구해서 학교에서 공간을 빌리고, 자리를 차지하고, 뭔가를 자꾸 요구해서 교사들을 힘들게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글이 많이 보이니 강사들도 속상합니다. 이게 강사들의 탓이고 이기적인 생각이고 잘못일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방과후학교의 교육 역시 학교에서 꼭 필요한 교육입니다. 이러한 교육을 하는 자들이 안정적인 신분의 기반이 있어야 하고 과정에도 체계가 있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국가는 그러지 않았고 학교는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쓰고 그만두는 방식을 유지해 왔습니다. 법적인 근거가 없으니 더욱 그렇기도 합니다. 강사들과 노조는 그래서 늘 방과후학교의 공공성을 강화하라고 주장해 왔지만 아직 갈길이 멉니다. 공공성을 강화하라는 주장에 늘 태클을 건 것은 교사들이었습니다.

최초로 방과후학교 운영 조례를 만든 경기도에서도 교사들의 강한 반대로 부결되었고, 세종시의 방과후학교 조례도 무효라며 소송까지 걸었습니다. 공공성을 강화하고 제도적 기반을 두기보다는 없애야 한다는 쪽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맞는 방향일까요. 법적 근거나 제도가 뒷받침되는 것도 교사들과 실무자들의 많은 업무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법적 근거가 있어야 업무를 담당할 실무사나 인력, 예산 등을 확보할 근거라도 되지 않을까요.

 

방과후학교도 학교의 공교육입니다

방과후학교는 교육부와 교육청에 담당 부서가 있고, 교육개발원에서 정책 연구를 하고, 각 교육청에서 가이드라인과 길라잡이를 만듭니다. 자유수강권이나 순회강사를 위한 예산도 제법 되고, 학교운영위에서 심의하고 운영합니다. 지역에 따라 강사들 대상 집단연수를 하기도 합니다. 교육부도 매년 내는 사교육비 통계에 방과후학교 비용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법은 없지만 공공적 근거는 충분합니다. ‘국가 교육과정이 아니니 사교육이라는 말은 억지입니다. 국가교육과정 즉 교과수업만이 공교육이라고 정의한 것은 어떤 법률에도 지침에도 백과사전에도 없습니다.

이러한 방과후학교를 학교에서 지우려는 주장은 그만 해야 합니다. 방과후학교를 폄훼하고 비하하고 학교 밖으로 내몰려는 주장은 끊임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이 모두 아이들을 위해서, 교육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방과후학교가 잘 되는 것은 교육을 위한 것도 아이들을 위한 것도 아니란 말인가요. 그래서 툭하면 업체위탁으로 바꾸기도 하고, ‘학교가 아닌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맡아 해야 한다고 주장도 하는 것인가요.

분명한 것은 강사들도 아이들을 끔찍이 생각하고 교육을 진심으로 위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만나본 강사들 어느 누구도 교육이 아닌 장사로, 사업으로만 생각하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하고 있다는 이는 없었습니다. 정말 교육을 위한다면 교사들과 방과후학교 강사들이 함께 의기투합하여 국가에 방과후학교의 제도적 기반을 속히 만들어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강사의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방과후학교가 학교에 있기에 학부모도 학생들도 믿고 배우고 안심하고 맡길 수 있습니다. 업체위탁이 좋다는 이들도, 지자체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방과후학교 그 자체를 없애자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 자체의 필요성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가능한 잘 운영되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더 이상 강사들을 깎아내리고 학교 밖으로 내보내자는 주장은 그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업들이 청소, 용역 등의 단순노무직 노동자들을 편하게 부리고 비용을 줄이려고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으로 부리자고 하는 것과 다를게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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