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학교 운영지침???

 

 

기고: 이진욱(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방과후학교강사지부 지부장)

방과후학교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 있다. 학교에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며 준용하는 상세한 지침서다. 17개 시도교육청마다 있고 교육부에서도 만든다. 이름은 조금씩 달라 방과후학교 가이드라인’, ‘방과후학교 길라잡이’, ‘방과후학교 운영 계획등이고, 총론을 담은 가이드라인과 세부사항을 담은 길라잡이두 가지가 모두 있는 곳도 있다. 어떤 것이든 기본적인 내용은 비슷하고 통칭 가이드라인으로 불린다.

 

 

 

방과후학교는 관련법이 없다. 운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안과 조례안이 몇 차례 발의되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거나 계류중이다. 법이 없는 현실에서 운영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가이드라인이다. 법이 아니라도 학교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근거다.

 

학교에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 담당교사나 실무사, 수업을 하는 강사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직 고용이나 처우가 열악한 방과후학교 강사들에게는 절대적이다. 때로는 족쇄나 칼날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기도 한다.

 

현실을 반영하여 매년 조금씩 개정이 되는데,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2020학년도 방과후학교 가이드라인/길라잡이 제작을 위한 개정 작업에 곧 들어간다. 이를 위해 각 학교 담당자들과 강사들 등 현장의 의견을 받고 있다. 의견이 취합되면 교육개발원이 주관한 TF 회의에 각 시도교육청이 추천한 이들이 모여 개정 논의를 시작한다.

 

노조(방과후학교강사지부)에서는 작년과 재작년에도 개정 의견을 내었고, 일정 부분 반영이 되어 강사들의 수업 환경이 나아진 것이 제법 있었다. ‘최대 2년까지 공모 절차 없이 재계약 가능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일부 지역이지만 임신·출산·장기입원 등의 경우 대체강사를 쓸 수 있게 한 것도 유의미한 성과이다.

 

하지만 아직 미흡한 것도 많고 강사들 입장에서 반기지 못할 만한, 오히려 퇴보한 것도 많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학생부에 방과후학교 수강 내역 미기재 방과후학교 운영 전담 교사 전보(승진) 가산점 폐지 각종 명칭과 서식의 용어 상당수가 차별적인 용어로 바뀜 환불 규정을 학교 자율로 하기로 했으나 운영 기간과 계약 기간을 엄격히 일치시키도록 한 규정도 함께 있어 이를 지키기 위해 전체 수업일수가 줄어드는 학교들이 많아짐 방과후 코디 신규채용 금지 등이다.

 

가이드라인 개정 작업에는 각 시도교육청 대표로 참여한 장학사, 교장, 교사, 그밖의 전문가,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 대표 정도가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학교의 관리자 또는 비슷한 직위의 이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방과후학교 수업을 직접 하는 강사들이 참여한 적은 없다. 관리자들이 규칙을 정하고, 수업을 하는 직접적인 주체인 강사들은 그저 따르기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매년 개정되는 가이드라인의 내용이 강사들에게는 늘 아쉽다. 어떤 식으로 논의하고 결정되는지도 알 수 없다. 개정되는 내용들도 자세히 뜯어보면 강사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보다 교사, 관리자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방과후학교는 방과후학교 강사들이 가장 잘 안다. 교육의 직접 당사자이고 주체이다. 그런데 개정 논의에 참여를 요구하면 '이해당사자여서...'라는 이유를 댄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교육과정 개편에도 교사들이 참여하고, 학부모 부담 경비를 심의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도 학부모들이 참여한다. 학교를 새로 만들거나 폐교를 논의하는 데도 지역사회 관계자나 학부모들이 참여한다. 이들 모두 이해당사자들이다. 규모 있는 노조들은 단체교섭도 한다. 그런데 방과후학교 강사들만 어떤 참여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학교운영위원회에도, 교육청과 한국교육개발원의 가이드라인 개정 논의에도 철저히 배제된다. 개인위탁 강사들만 참여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하여, 그러면 업체위탁을 하는 위탁업체 대표도 참여하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했으나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의견이라도 잘 수렴하고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약속만 하면 될까. 방과후학교 강사들을 배제한 논의에서 방과후학교가 어떤 식으로 난도질되었는지 예전의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20186월 교육부에서 학교생활기록부 개선을 위한 시민참여단 논의를 했는데, 여기에도 역시 방과후학교 강사들은 빠졌다. 그런데 이때의 논의자료를 보면 방과후학교를 사교육을 유발하고 학생간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소라고 표현하였다. 방과후학교 강사라면 이 표현을 보고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20186월 교육부 학생부 개선 시민참여단 정책숙려 자료집 가운데. 방과후학교를 시교육을 유발하고 학생간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소라고 표현하였다.

 

또 지난 6월 울산광역시교육청에서 있었던 청렴방과후학교 원탁토론회에서도 교장, 담당교사, 행정실장, 업체관계자들만 참여하고 강사들은 빠졌다. 이때의 논의 보고서를 받아보았는데, ‘개인위탁 강사의 경우도 업체 강사들처럼 쉽게 해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방과후학교를 모두 마을학교로 전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도 있다. 방과후학교 강사들이 빠진 자리에서 방과후학교와 강사들은 이렇게 난도질당하고 있다.

 

 

울산광역시교육청 청렴 방과후학교 원탁토론회보고서 일부. 강사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강사들이 빠진 가이드라인 개정 TF에 과연 어떤 논의가 오갈지 짐작이 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논의 자리에 강사들을 배제하고 의견만 내라고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최근 학교에서도 학교자치의 바람이 불고 있어 일부 지역에서 조례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학부모들의 교육 참여도 활발해지고 있고, 교사들의 단체들도 다변화되고 있는 마당에, 방과후학교 강사들만 당사자들의 논의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방과후학교 역시 학교교육의 일부이고 공교육의 한 축이다. 이를 이끄는 가이드라인, 길라잡이는 공교육을 지탱하는 한 근거라고도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방과후학교 관련 법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당장 현실적으로는 방과후학교 가이드라인, 길라잡이 개정을 통한 근거 확보와 문제 개선이 당면한 과제이다. 여기에 가장 최전선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방과후학교 강사들을 배제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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