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이 만난 에세이의 읽는 맛

달나라로 간 소신

기억과 기록이 만난 에세이의 읽는 맛

사랑받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온 힘을 다해 기억을 되살리고 또 그것을 맛깔 나는 글로 풀어내는 작가의 감성과 능력이 새삼 놀랍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무심히 사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모두에게 소중한 일상(日常)이다. 저자가 풀어내는 가족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성공스토리나 인생역전 드라마에 기죽을 필요가 없다. 내 인생도 그에 못지않다. 책을 넘기면 마치 ‘나의 이야기 같아서’ 혹은 ‘나와는 다른 이야기’라서 기뻐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할 것이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세상사는 이야기 ‘가족 가치’에 대한 든든한 인식 보여줘

화분 받침으로 전락한 두꺼운 족보(族譜). 정승, 판서 스토리도 없는 난해한 책을 어린 딸들에게 보라고 권할 수 있을까. 안 되겠다. 쉽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줘야지…. 그렇게 시작된 저자의 가족 이야기는 우리의 세상사는 이야기로 커져버렸다. 우리는 평범하다 못해 늘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다.

15장(章)으로 구성된 에세이집은 일상이 히스토리가 되는 과정이다. 따뜻한 글이 뭉클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냉철한 지성으로 밀려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쫓아가다 보면 세 잎의 행복은 외면해버리기 일쑤다.

“나는 가끔, 나의 느낌이 모두 언어가 되어 여기저기 살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염려를 할 때가 있다”는 저자는 “나의 머리와 나의 가슴에는 항상 7할(割)만큼의 느낌만 남고, 남아 있는 그 느낌의 7할만큼만 언어가 되고, 또한 그 언어의 7할만큼만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기억된 것은 사라질 테니까…”라고 썼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지면 안 되는 느낌이고, 언어고, 기억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녀들의 어린 시절, 그것이 왜 중요하냐고 묻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성장과 아픔이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을 불편해 하지 말기를 바란다. 잊힌 것은 잊힌 대로, 기억된 것은 기억된 대로, 기록된 것 또한 그것대로 남아있어야 한다. 이 책은 당신과 당신 주위를 응원한다. 논픽션을 픽션이라 읽어도 좋고, 픽션이 논픽션이 되었다고 믿어도 좋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박인기 경인교대 명예교수는 “저자의 이야기가 관류하는 정서적·의지적 포인트는 가족의 가치”라며 “기억과 기록으로 풀어낸 가족에 대한 든든한 인식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억이 곧 존재를 존재이게 할 뿐 아니라 기억을 정련시키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의 글들이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고 밝혔다.

 

본문 내용 발췌

할머니가 싸주는 도시락에는 달걀 부침개도 어묵볶음도 없었다. 검은콩을 조린 것이 그나마 나은 반찬이었다. 친구도 없는데 도시락까지 맘에 들지 않았다. 시골에서는 벌겋게 김칫국물 번진 도시락을 꺼낼 때도 창피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공부를 따라 하기는 더 어려웠다. 그럴수록 시골에서 놀던 때가 그리워졌다. -45p

아빠라는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뽀뽀를 해주겠다고 달려들더니 조금 큰 후에는 오히려 뽀뽀해 달라고 난리다. 딸들은 재우고 깨우는 것도 재미있다. 아기 때는 시간이 되면 잠들었는데 커갈수록 재우는 수고가 더 따라야 한다. 동화책을 읽어주면 쌔근쌔근 잠이 든다. 은이와 윤이는 내가 들려주는 창작동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96p

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 나는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박탈당한 자유, 한 발짝 너머에는 있을 것 같은 자유가 그리웠다. 이념도 사상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철창 밖으로 한 발만 옮기고 싶었다. 3일째 되는 날은 울 지경이었다. 경찰관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아저씨, 10초만 나가 있게 해주세요.” -147p

나의 살던 고향과 툇마루가 있는 초가집, 함께 미역 감던 동무들, 만들기 숙제로 진달래나무 뿌리를 캐던 그 시절이 잊히는 것이 아쉬웠다. 잊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나는 그것을 잊지 않는 나를 기억한다. 가난하지만 추(醜)하지 않고, 공부가 크지 않지만 천(賤)하지 않고, 너그럽지는 못하더라도 협량(狹量)치 않은 삶이 나의 바람이다. -201p

저작권자 © 티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