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 (3)

십여 년 전 가을이었다. 이미 쪽박은 찼고, 채권자들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다음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대 볼 곳이 제주도의 임 사장이었다. 씨감자 8톤을 보내주고 대금을 그때까지 받지 못했다. 그 돈이면 그래도 원주에 사글셋방이라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임 사장이 전화번호를 슬그머니 바꿔버려 포기했었는데, 농심의 이 과장이 임 사장이 제주도 가을감자를 납품한다고 귀띔해주었다.

완도에서 며칠을 버텼다. 선착장에서 기다리며 제주도로부터 화물이 들어올 때마다 화주가 누군지 물어보고 실망하고……. 갑갑했다. 얄팍해져 가는 지갑 탓에 여관에 묵기를 포기하고 차에서 잠을 청하고자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쇠내미란 곳에 차를 댔다. 건너편 섬 자락에 불이 참 아름다웠다.

‘아, 나는 저 작은 불 하나 밝힐 집조차 없구나!’

신세타령이 절로 나왔으며 눈물도 찔끔 났다. 그때 지나던 경찰이 내가 의심스러웠는지 신분증을 보자고 하기에 그 경찰에게 물어보았다. 앞에 보이던 섬 이름이 무어냐고. 그게 백일도다.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섬 자락의 가로등 사이사이에 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낮 동안 바다에서 지쳐버린 육신으로 어둠 속을 기어들어간 사람들이 까무룩 죽은 듯 밤을 보내고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아직 살아 있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켜든 등.

아름다웠다. 동시에 궁금해졌다. 저 아래 보이는 섬사람들은 자신이 밝혀 든 등을 누군가 깊은 부러움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그 등이 이렇게 기막힌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지 알까?

그 섬사람 하나하나 내 택시에 태워 그 등이 내려다보이는 이 달아의 언덕에 함께 서고 싶었다. ‘당신이 밝힌 등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별이 지상에 내려와 쉬고 있는 듯하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저씨, 아이가 몇 살이에요?”

자그맣게 불 켜진 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자가 물었다. 그렇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여자는 내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마치 혼잣말처럼 자그맣게 “아이 추워.” 하면서 차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어깨가 들썩이는 것 같았다.

문득 여자의 지갑에 들었던, 낡을 대로 낡아 버린 그 사진이 떠올랐다. 그러자 내 백일 사진이 그 아이의 사진과 겹쳐왔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다. 조그맣게 국수공장을 하고 계시던 아버지가 며칠 여행을 떠나셨다. 아버지 말씀대로 봉화 약수터에 병 고치러 가신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고, 단지 어머니의 한숨은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아버지 돌아오신다던 전날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영주의 외가에 다녀오겠노라 하시며, 어머니가 자그맣게 보따리를 싸셨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돼지고기로 국을 끓여주셨는데 둥둥 뜬 무와 파가 고기보다 훨씬 많았지만 맛있었다. 명절이나 제사 때나 먹어볼 수 있었던 것이었기에 우리 올망졸망 삼남일녀는 마구 퍼먹었던 것 같다. 한잠 자고 오줌이 마려워 눈을 떠보니, 깜깜해야 할 방안에 촛불이 켜져 있었고 어머니가 윗목에 앉아 계셨다. 부스스 일어나며 ‘엄마’하고 부르자 어머니는 나를 와락 안으며 울음을 터트리셨다. 그 통에 누이와 두 동생 모두 일어나 영문도 모르고 함께 울었다. 그때 나는 보았다. 어머니가 보따리 속에서 넣어뒀던 내 사진을 꺼내 보시며 우셨던 것을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의 짐 속에 내 사진이 들어 있으면 불안했다.

 

택시를 바라보니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임이 없었다. 어쩔까 잠시 망설이다가 바다만 바라보고 그냥 서 있었다. 바다가 온통 내 마음을 빼앗아서 그랬냐고? 천만에! 여자를 버려두고 바다를 본다? 영화 찍는 줄 아는가? 세상에 모든 슬픈 것들은 다 예쁘잖은가? 눈물 흘리는 여자랑 좁은 택시 안에 함께 앉아 있으면서 어찌 안아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건 예의도 아니리라. 그래서 밖에서 바다만 바라봤다. 여자가 겁이 났었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남자 아닌가.

 

어쨌든 바다는 아름다웠다. 잔잔한 섬 위에 환장하게 즐거웠던 때가 떠올랐다.

딸아이가 세 살 되던 1998년이었다. 치악산 뒤를 돌아서 횡성군 안흥면을 지나 평창군 방림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내 집이 있던 강릉까지는 한 시간 반이나 더 가야 했기 때문이다.

산모퉁이 길을 돌아드는데 전조등 시야 가득 코스모스가 들어왔다. 이미 자정을 넘겨 주위는 온통 칠흑이었는데 느닷없이 눈앞에 꽃의 세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 사이로 시멘트로 포장된 작은 길이 보였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 길을 따라 들어갔더니 불 꺼진 휴게소 마당이 나타났다. 테니스 코트 두 개 정도의 넓이였던 것 같다. 바람이나 쐬고 갈까 하는 마음에 차에서 내렸다. 마당 둘레로, 웃자라 내 키만큼 되는 코스모스의 휘장이 아늑했다.

“아빠, 저도 예뻐 꽃이 되고 싶어요!”

꽃을 꺾어달라는 말이었다. 어째서 그리 말을 했는지 잊어버렸는데, 꽃을 갖고 싶을 때 딸아이는 항상 그리 말을 했었다. 양쪽 귀에 꽃을 꽂아줬더니 딸아이는 폴짝폴짝 꽃의 휘장을 따라 달렸다. 졸지에 별 밤 운동회가 벌어진 것이었다. 마누라와 나 그리고 딸아이는 등에 땀이 배 나올 정도로 폴짝폴짝 뛰고 달리고…….

온통 어둠에 싸인 세상 속에 자그맣게 켜진 전조등 불빛, 그곳만은 여전히 내 세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딸아이의 까르르 거리는 웃음소리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에 퍼져 나갔고, 마누라는 짐짓 즐거운 척 딸아이를 좇아 함께 달렸다. 껄껄 웃으며 그 뒤를 따라 뛰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불어오는 바람에 코스모스는 하늘거리는데…….

 

꽤 시간이 지났던 것 같다. 동편 하늘은 이미 밝아오기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 싶어 택시로 돌아가자 여자가 눈물 그렁한 눈으로 물었다.

“아저씨, 완도까지 가면 택시비 얼마 받아요?”

“글쎄요, 수 일 내로 완도에 들를 일이 있는데…….”

말꼬리를 흐렸다. 순간적으로 가방에 있던 사진이 떠올랐다. 아직 싱싱한 시절의 여자 품에 안겨있던 그 똘망똘망했던 아이 말이다.

문득 눈앞의 여자를 데려다 주고 싶었다. 여인의 잠옷 자락 같은 노을을 끌고 섬 뒤로 해가 사라질 때쯤, 그리움에 빠져 눈물 콧물 다 짜던, 백일도가 건너다보이던 완도의 그 바닷가 말이다. 마누라? 이야기 잘하면 이해해주지 않을까? 만약에 그래도 날 버리면 물러나 주려고 마음먹었다. 마침 빈 가슴의, 내 눈에는 아가씨 같은 아줌마도 곁에 있잖은가.

 

“수고하세요. 언제나 안전운행하시고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택시기사와 손님이란 것이 응당 그렇듯, 여자와 나도 시내로 돌아오자 깜짝 놀란 듯 남남으로 돌아왔다. 두 시간의 대화도 단지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말 한마디로 종결지었다. 막무가내로 넣어주는 십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차비 겸 가방 돌려준 대가로 받아들고 나니 허전했다.

 

기진한 몸을 끌고 집에 들어서니 ‘이 집 가장이 돌아오지 않았기에 다소곳이 앉아 기다리고 있노라.‘라고 말이라도 하듯이 붉은색 수면등이 마누라 대신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밖은 이미 훤하게 밝아있건만, 신랑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마누라와 딸아이는 서로 엉켜서 코까지 띠링띠링 골고 있었다. 추리닝인지 잠옷인지 헷갈리는 마누라의 바지에 새겨진 코스모스는 여전히 하늘거리는데……. 조심조심 커피를 타 왔다. 홀짝홀짝 마시면서 그 꼴을 구경하자니 즐거웠다. 잠시 고민했다. 잠에 빠진 마누라, 똥침이나 팍 놔 버릴까?

 

영화 속 장면 같은 몇 시간이 가져온 여운이리라. 스며들 듯 골목길로 사라져 간 여자의 모습이, 그녀의 가방에 들었던 그 아이의 사진과 함께 내 머리에 한동안 맴돌았다. 몇 년이나 지난 사진을 그대로 지갑에 넣고 다닌다? 어쩌면 자식 앞에 떳떳한 엄마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만약에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움조차 가지면 안 된다는 법은 없잖은가.

여자가 한 번쯤 전화를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택시기사인 내가 먼저 손님에게 전화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전화가 오면? 정말 택시비 따위는 받지 않더라도 완도의 쇠내미에 나란히 앉아 여자에게 백일도를 바라보고 싶었다.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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