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 (2)

여자가 타자마자 내 택시도 출발했다. 기사가 맥이 빠지면 택시도 그래야 하는 건지, 앞으로 쭉쭉 나가주지 못하고 빌빌거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저씨, 천천히 가는 것은 좋은데, 불이나 켜고 갑시다.”

여자의 말에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전조등도 켜지 않은 채 꼬불꼬불한 길을 꼬물꼬물 기고 있었다. 마치 어둠 속으로 사라진 여자처럼 말이다. 멋쩍어서 옆을 돌아보니 여자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마치 사진 속의 그 모습처럼 이를 다 드러낸 채 하얗게.

“오늘 밤은 공연히 어둠이 좋네요.”

멋쩍었음에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다고 전조등도 끄고 운전을 한단 말이에요?”

“그게 말입니다. 아까 내리신 손님 때문에 그만 혼이 빠졌는지, 나도 모르게‥‥.”

“일부러 그러신 것 같은데요. 엉큼하기는……, 순진한 분 같았는데. 하기야 저도 오늘은 엉큼한 기사가 좋다 아입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여자와 나는 함께 큰일을 치른 동지가 되어 있었다.

“술 탓인지 시원한 것이 마시고 싶은데, 가까운 곳에 음료 파는 곳이 없을까요?”

발그레한 얼굴로 여자가 물어왔다.

“있지요.”

시원스레 대답했다. 잽싸게 대답을 하지 않았더라면, ‘에이, 그만둬요. 내가 실없는 소리를…….’ 이러면서 여자는 입술을 꼭 깨물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럴 때 달아공원이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이미 연명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에 진입했지만 불법 유턴을 해 버렸다.

“오늘 참 기가 막힌 날이네요.”

여자가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오히려 침묵이 말을 재촉한다는 걸 나도 알고 있기 때문에.

“한물갔다고 퇴짜를 세 번이나 맞았네요. 아저씨, 나 늙었어요?”

‘천만에!’하며 펄쩍 뛰고 싶었지만 그냥 웃었다.

“불러서 가면 퇴짜 맞고, 또 불러서 가면 퇴짜 맞고…….”

“손님이나 나나 오늘이 그런 날인 모양입니다.”

“예?”

말 안 했다. 이 나이에 스무 살이나 넘었을까 싶은 녀석에게 당했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웠기도 했지만, 여자의 얼굴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여유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고성까지 내 택시를 타고 간 그 녀석, 차비 가지고 나오겠다고 아파트 뒤로 사라지더니 다시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돈이 없다고 이야기했더라면 기다리지나 않았을 터인데, 나쁜 놈! 바보처럼 십여 분을 기다리다가 결국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내가 멍청했다. 장거리 가고는 차비 안 주고 내뛰는 놈이 가끔 있으니 함께 차에서 내려 따라가야 한다는 말은 서너 번도 더 들었는데……. 하기야, 따라 내리면 또 뭐하겠는가. 구부정한 채 걸음도 빠릿빠릿하게 제대로 못 걷는 내가 어찌 쫓아가느냔 말이다.

 

“인사가 늦었네요.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가방 돌려주신 것. 그 안에 돈도 제법 있었는데…….”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내 웃음이 많이 어색하리라 생각했다. 그냥 ‘고맙습니다.’라고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솔직히 갈등했었다. 죽자고 시내를 돌아다녀 봤자, 한 시간에 만 원도 온전히 못 버는 신세가 아닌가. 그런 주제에 남을 동정한다? 사치가 아니겠는가. ‘네 가족 입에 풀칠이나 제대로 해라, 등신 자식아.’하고 비아냥거리는 마누라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이 야심한 때에……. 아저씨, 실내등 끕시다. 누가 보면 기사님하고 바람났다 하겠습니다.”

여자는 역시 프로였다. 말 한마디로 택시 안의 어색함을 깨끗이 날려버렸다.

“이미 우리, 바람난 것 아닙니까?”

둘이서 킥킥거렸다. 웃으면서 아주 잠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눈가의 잔주름이 애처로운 듯 포근했다. 애처로움이야 거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늘 따라다니는 훈장이지만 포근하다는 것은 그 세월을 가슴 속에 부대낌 없이 그대로 녹여 담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 포근함 속에도 타고난 듯이 보이는 애교가 녹아 있었다. 애처로움에 장식처럼 앙증맞게 매달린 애교, 매사 심각해서 갑갑한 여자보다 얼마나 좋은가!

“아저씨, 고향이 어딥니까?”

“강원도 원주요.”

“참 멀리도 오셨네요. 처가가 통영인 모양이지요?”

“처가요? 아직 총각이라 여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미인 앞에서는 총각인 게 더 좋을 듯해서.”

“그렇게 여겨 드리지요. 총각님.”

“고맙습니다.”

“이게 웬 횡재야. 내가 총각이랑 심야에 데이트를. 흐흐흐……. 그런데 아무 연고도 없는 통영 땅에는 어인 일로?”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야 날 받아줄 곳이 택시회사밖에 없고, 고향 땅에서 택시기사 하기가 쪽팔려서…….”

 

그러는 사이에 내 택시는 달아공원에 도착했다. 여자보다 먼저 내려 자판기 앞으로 걸었다. 자판기가 지폐를 도로 뱉어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동전을 꺼내면서 여자를 돌아봤더니 그 사이에 여자도 차에서 내려 주차장 끝자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여자를 위해 차가운 캔 음료를, 나를 위해 뜨거운 커피를 뺐다.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망할 커피가 왜 그리도 출렁거리던지…….

“갑자기 뜨거운 게 마시고 싶어졌어요. 이 커피, 제가 마셔도 괜찮겠어요?”

“아, 예……. 그러세요.”

비스듬히 서서 잔을 내밀었다. 커피가 쏟아져 흐른 손등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조금 부끄러웠다.

“뜨겁겠다. 괜찮아요, 아저씨?”

여자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련한 그 시절 내 소꿉각시처럼 ‘호~’라도 해 주려는 듯 입술을 뾰족 내밀고 다가왔다. 얼마 만인가, 이 두근거림.

“총각이라 부르라 했잖아요.”

뒤로 한 발 물러나며 허리춤에 손을 쓱 문질러 닦았다. 무진장 화끈거렸다. 그러는 나를 바라보던 여자가 ‘킥!’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총각님은 바람둥이 같아요. 그것도 어수룩한 바람둥이요.”

순간, 내가 늑대를 닮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다가오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여자의 눈이 아찔했다. 나는 왜 슬픈 표정으로 웃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안아주고 싶을까. 불안했다. 동시에 서글펐다. 만약에, 그 여자가 한숨이라도 쉬며 ‘아, 당신 바보군요,’ 라고 말했더라면 ‘욱’하고 덤벼들 수 있었을까? 이미 등은 굽고 눈빛 또한 흐려졌는데…….

 

“아직 잠들어 있는 바다야. 정말 좋다!”

여자는 폴짝폴짝 뛰었다. 나도 바다를 바라봤다. 늘 보고 다니는 바다지만 달빛조차 없는 바다를 가만 들여다보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바다는 밤하늘을 비추며 곤리도를 돌아 사량도로 흐르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던 것은 드문드문 떠 있는 새까만 섬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저기 옹크리고 앉은 섬 사이로 어선의 엔진 소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고,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곤 했는데 그 때문에 섬이 더욱 까맣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웠다. 까맘으로 더욱 밝아 보이는 섬의 실루엣……. 먼 인연을 좇아 나를 찾아오는 그리운 이가 하나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 바다에 함께 서 보고 싶었으므로.

여자는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러는 여자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타향의 바다에 홀로 선 여자라고 생각하니 멋있다. 남이 외로우면 멋있게 보이는 것 아닌가? 그러는 나도 멋있는 사내였으리라. 그러고 보면 밤의 달아공원에 서면 누구나 멋있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섬의 불빛이 참 아름답네요. 아저씨, 혹시 백일도 알아요?”

“예 백일도…….”

“강원도 분이 어찌 알아요, 백일도를?”

“그러는 손님은 어찌 압니까?”

“거기가 내 고향이거든요. 발걸음 안 한 지 이미 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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