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 (1)

어렵잖게 지갑을 찾았다. 십만 원짜리 수표 두 장, 현금 칠만 원 그리고 면허증이 들어 있었다. 75년생에 예쁜 이름이었다. 지갑이 도톰했던 것은 한심스럽게도 악동시절 내 주머니에 가득하던 딱지만큼이나 많은 명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고여덟 장 됨직한 사진. 삼십이나 되었을까 싶은 여자가 아이를 안고 소복하게 쏟아지는 분수 앞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지갑에 들어간 세월을 말해주듯 사진은 낡을 대로 낡았고 언젠가 물기에 닿았던지 한 귀퉁이가 탈색되어 있건만, 사진 속의 여자는 싱싱했다. 잘 어울리는 선글라스 아래 치아를 다 드러낸 채 웃는 여자의 얼굴은 그녀의 웃음만큼이나 하얬다. 여자의 무릎 왼편으로 사각형 대리석이 보였는데, 앞의 글자는 사진 밖으로 달아난 채 대공원이라는 글자만 남아 있었다.

사진을 몇 장 넘겼다.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여자 닮아 더 예쁜 것 같은 아이, 아이, 아이…….

 

 

 

여자의 연락처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 많은 명함 중에 몇 곳에 전화해서 면허증에서 확인한 여자 이름을 물어보니 안다는 곳이 없었다. 마지막 시도를 했다. 명함 뒤편에 적힌 미영이란 이름과 함께 적힌 번호로 전화했다.

“혜경이를 어떻게 알아요?”

대뜸 물어오는 말이 톡 쏘는 듯 느껴지기에 더듬거리며 설명해야 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혜경이에게 연락해서 기사님께 바로 전화하라고 그럴게요. 이 전화기 끄시면 안 돼요. 알았지요?”

손님을 찾아 거리를 헤매면서도 걸핏하면 스스로 꺼져버리는 내 전화기가 불안해서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손님이 탈 때마다 장거리를 가자고 하면 어쩌나 하는 필요도 없는 걱정까지 했었다.

삼십 분쯤 기다렸을까, 혜경이라는 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유람선 터미널 매표소 건물 앞인데…….”

가까운 금호마리나콘도에 손님을 모시고 가는 중이었기에 금방 돌아 나올 수 있었다. 여자가 불빛을 등지고 어둠 속에 서 있었으므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사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고맙습니다, 여기 사례비.”

다급하게 말을 하며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차 안으로 집어던지더니 여자는 내 손에서 가방을 낚아채서 유람선 터미널 안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 건물에 있던 유흥주점 중 한 곳으로 달려갔으리라. 허전했다. ‘망할…….’ 하고 욕이 나왔다. ‘이까짓 돈 때문에 가방을 돌려주려고 했는지 아는가?’ 하고 투덜거리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왜 가방을 돌려주려고 안달했었는지.

그렇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유람선 터미널을 돌아 나오는 길에 고성으로 가자는 손님이 탔기 때문이리라. 목적지까지 가는데 차비가 얼마냐고 묻지도 않는 손님은 보나 마나 기사가 달라는 대로 주는 손님 아닌가. 신 나게 날아갔다. 겨우 새벽 한 시, 영업 종료 시각인 일곱 시까지는 많이 남아 있었고, 이미 사납금 벌어 놓고도 몇만 원 더 벌어 둔 터라 새벽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면 제법 가져가는 날이 될 것은 틀림없었다.

 

 

새벽 세 시 반, 내 지갑은 변함없이 홀쭉했다. 고성에서 돌아온 후로 이 바닷가 저 언덕에서 시간을 허비해 버린 대가였다. 심야할증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차도 사람도 자취를 감춰버리고, 목표를 잃어버린 채 거리를 헤매는 택시 몇 대만 가로등 아래를 맴돌고 있었다. 허전했다. 연달아 한숨이 새나왔다. ‘이러다가 집에 가져갈 것이 별로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느긋하게 담배 한 대 피우고 마지막 안간힘을 쓸 작정으로.

그때, 내 전화기가 울었다.

“좀 전에 가방 돌려받은 여잔데요.”

 

 

미수동 바닷가에 있었으므로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아 유람선 터미널 에 도착했다. 조급함을 달래려고 자판기 커피를 뽑았으나 입도 대기 전에 여자 둘이 터미널에서 나왔다.

 

“돈 많이 버셨어요? 일단 연명 부탁합니다.”

내가 대꾸할 사이도 없이 또 다른 여자가 말을 받았다.

“이쁜 년, 오늘은 언니 대접 제대로 하네. 모셔다 주기까지 하고 말이야. 히히히!”

다른 여자는 많이 취한 듯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아직 심야할증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유람선 터미널에서 연명마을까지 만 원을 훌떡 넘어갈 게 분명했으니까.

세포고개 부근을 지날 때였다.

“아저씨, 급한데 잠깐만…….”

어쩌겠는가. 차를 세웠다. 여자는 바빴다. 웩웩거리는 동료의 등을 두들기다가, 차 문을 열고 연방 내 눈치를 살피다가…….

사연이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만 나는 택시기사 아닌가. 웩웩거리는 동료의 등을 두들겨주는 그 여자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왜냐면, 등 두들기는 여자의 손길이 마치 연인 간의 애무 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둘이 동성연애자가 아닐까 하는 로맨틱한(?) 생각이 살살 고개를 들었다. 나도 술 마시고 토하는 친구 놈의 등을 몇 번 두들겨 줬지만, 눈앞의 여자처럼 그렇게 정성을 들인 준적은 없다. 말이야 부드럽게 했지만 실제 등을 두들겨 줬다기보다 두들겨 팼었다는 게 옳을 것이다.

“맨날 퇴짜나 맞고. 아, 이 짓도 이제는 못 해 먹겠다. 늙었다고 꺼져라, 못 생겼다고 꺼져라……. 나쁜 새끼들.”

“그만 해라, 언니야. 기사님 보기 창피하다 아이가?”

“창피? 뭐가 창피해, 이 년아. 내가 없는 말 했나?”

“아저씨, 이해 좀 해 주이소, 오늘 우리 좀 그랬다 아입니까. 그저 아무 말씀 마시고 연명까지…….”

 

 

연명마을 공판장 부근에 차를 세웠으나 동료 여자의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모르는 여자가 훌쩍이는데 곁에 다소곳이 앉아 있기에는 택시는 너무 좁았다. 내가 먼저 내렸다. ‘참 오지랖도 넓다.’ 이럴까 봐 덧붙이는데, 내가 차에서 먼저 내린 이유는 두 여자에 대한 배려라기보다 예의를 갖춘 독촉으로, ‘잠깐만 이야기하고 내리십시오.’라는 뜻이다. 물론 ‘내리십시오.’에 방점이 찍힌 것이고.

오 분쯤 흘렀다. ‘제기랄…….’하고 내 입에서 욕이 나오기 직전 여자들이 차에서 내렸다. ‘임무교대!’라고 명령이라도 떨어진 듯 차에 올라 두 여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더 기다려야 하리라. 헤어짐이란 항상 아쉬운 것이니까. 특히 울음을 동반한 헤어짐은 더욱 그런 것이다.

말 그대로 잠시였다. 박치기하듯 볼에 서로 뽀뽀 한 주먹씩 쥐어박고 몇 번인가 목 조르듯 포옹을 주고받더니 여자의 동료가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때야 동료의 모습을 자세히 보았다. 통통한 몸매, 뒷모습이 애벌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래지어 끈, 허리의 군살 그리고 팬티 자국까지, 몽실몽실한 마디마디가 꼬물꼬물 어둠 속으로 애처롭게 기어가고 있었다. 이파리에서 떨어진 애벌레가 꼬물꼬물 나무 위로 다시 기어오르듯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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