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 ‘처마밑 부르스’는 내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다. ‘부르스’라는 말은 식자들이 말하는 ‘블루’의 의미가 아니다. 남녀가 부둥켜안고 추는 ‘브루스’는 더욱 아니다. ‘부르스’는 시쳇말인 ‘난리부르스’에서 따온 말로 ‘별 것 아닌 일로 수선떨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눈앞의 풍경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글이 금방구운 삼치구이만큼이나 맛깔스러워요. 각자의 일을 마치고 모여들 가족을 위해 삼치구이를 하는 따뜻한 이가 사는 둔전마을, 그 집 처마 밑이 초겨울 바람으로 을씨년스러울 법도 하련만 행복하지 않으면 달리 할 것이 없어 행복하게 살아내는 어느 가장의 가족 사랑이 한없이 따사롭게만 느껴져 오니…….’
  ‘오늘따라 둔전마을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가보지 않고도 한눈에 삼치 굽는 통영총각님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네요. 적어도 딸아이가 성장해서 결혼을 한다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깊을 거 같아요. 그리고 삼치 구워주는 서방이 부럽네요.ㅎㅎㅎ’
 
  이웃 분들이 달아주신 댓글이다. 예상대로 내 이웃 아줌마들은 내 ‘난리부르스’에 뜨거운(?) 반응을 보여줬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녀들은 비바람 치는 처마에서 허둥대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웃었으리라. 또 나처럼 살가운 신랑을 둔 내 마누라가 부럽다는 생각도 했으리라. 그러다가, 어쩌면, 옆에 잠든 자신의 신랑을 돌아보며 꿀밤이라도 한 방씩 먹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타인에 대한 부러움은 너무도 쉽게 자신에 대한 처량함으로 바뀌는 법이니까.
  아줌마들의 댓글을 보면서 나는 즐거웠다. 트리밍이라고 하던가? 사진 찍는 사람들이 즐겨하는, 원하는 부분을 드러내기 위해 나머지 부분을 적당히 걷어 내거나 가리는 작업 말이다. 나의 난리부르스가 트리밍의 효과를 본 것이었다. 제목조차 ‘처마밑 부르스’ 다시 말해서 ‘처마 밑의 난리부르스’ 아닌가. 과도한 몸짓으로 시선을 끌면 바닥에 깔린 궁상이 슬그머니 가려져서 묘하게도 낭만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 그것을 알고 쓴 글임을 이참에 고백한다.
  내 글을 다시 읽어보고는 우쭐해졌다. 처마 밑의 피에로가 연상되는 재미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내가 누군가. 하루하루 살아지는 대로 그냥 사는 놈이 바로 나 아닌가. 삶에 철학이 깃든 사상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삶의 애환을 마치 남의 일인 양 돌아볼 수 있는 도통한 놈도 아니어서, 내가 쓰는 글의 소재라는 것은 그저 히죽거리며 살아가는 내 일상사일 뿐이다. 그렇다면 한두 줄 읽어보고 팽개쳐질 글만 아니면 만족해야 하는 것 아닌가.
  ‘흠, 그러고 보니 나도 글이란 것을 제법 쓰는 놈이군.’
  기고만장해져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오두방정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글 속에 나타난 처마 밑의 우스꽝스런 내 피에로 몸짓에 슬픔 같은 것이 깔려왔다. 역시 궁상이었다. 그 순간, 마누라가 이 글을 볼까봐 두려워졌다. 실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옮겨 적었기 때문에 최소한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은 받지 않을 것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누라가 낭만의 가면 속에 숨은 궁상을 비웃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배고픈 낭만의 허무를 마누라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시무룩해졌다. 내가 난리부르스를 과도하게 했던가? ‘만약에 그랬다면…….’하고 생각하니 난감했다. 내 마음에 들어있는 ‘나 홀로 사전’에는 그 난리부르스라는 말이 ‘내숭 혹은 위선, 아니면, 사치나 궁상의 미화’ 쯤으로 나와 있기에 더욱 그랬다. 무엇을 드러내기 위해 나머지를 외면하는 일, 그것이 바로 숨은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라고 이야기를 하더라만 그것은 세상사 살만큼 살아 통달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겠고, 내가 그랬다면 그것은 가증스런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살아지는 대로 그냥 사는 내가 아니던가.
  ‘삼치 구워주는 서방 백 놈보다 돈 잘 벌어주는 신랑 한 분이 더 좋아요. 잘 아시면서…….’
  이웃의 댓글에 답을 달았다. ‘마누라야, 미안하다.’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러고 나니……. 그러고 나니 말이다. 아주 조금, 내 처지가 가여워졌다. 아웃복서의 서글픔이라면 딱 맞는 표현인 듯하다. 펀치력 없는 놈이면 맷집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숨을 곳 없는 사각의 링에서 더킹과 위빙, 몸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스텝을 밟아야 하는 촐싹거림, 다시 말해서 난리부르스를 감수해야만 한다. 마누라 지갑을 채워주지 못하면 ‘배 째라.’ 하는 뻔뻔함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닌 나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촐싹거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내 모습이 링 위의 아웃복서와 다름 아니리라…….
 
  앞글에서 고백했듯이 나는 그리 살가운 남자가 아니었다. 비바람 치는 처마에 나앉아 생선이나 굽는 그런 남자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 내가 이렇게 처마 밑에 나앉아 촐싹거리는 놈으로 망가져 버렸다.
  하도 오래되어 언제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언젠가 ‘걱정일랑 붙들어 매어두고 나만 믿어라.’라고 마누라에게 친 큰소리의 메아리가 허무하게 느껴졌던 때였다. 큰소리, 큰소리야말로 죽을 때까지 움켜쥐고 있어야 할 사내의 마지막 보루 아닌가. 나는 이미 그럴 수 있는 시절을 지나쳐 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마누라랑 살아온 지 이미 기십 년, 내 밑천은 드러날 대로 다 드러나 버려서 이제는 큰소리조차 칠 수없는 몸이 되어버렸음에 많이 서글펐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도, 나랑 사는 내 마누라에게도.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그날 나는 아직 퇴근하지 않은 마누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돈 있어?”
  마누라가 반문했다.
  “오랜만에 솜씨발휘 한번 해 보려고…….”
  그날 볶음밥을 만들었다. 팬에 계란 몇 개를 깨어 넣고 프라이를 하다가 잘게 썰어둔 김치를 넣고 그 김치가 아삭아삭한 맛을 잃기 전에 밥을 넣고 볶는, 학창시절 10여년의 자취경력으로 터득한 내 실력을 발휘했다.
  그날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그것은 분명히 폼 나는 사건이었다.
 
  ‘가스 값은 오르고, 손님은 줄고, 영 죽겠네!’
  투덜거려봤자 무슨 소용인가. 언제나 옛날이 좋았고 오늘은 항상 죽을 것 같았지. 뒤집어 보면 오늘은 항상 미래의 좋았던 옛날 아닌가. 좋든 싫든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내가 선택한 길이었음을 상기하고 그것을 즐기려 했다. 이미 흘러 보낸 어제도 아니고,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임을 자각하고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느긋하게 음미하고 사는 것, 그것이 반백의 나에게 가장 폼 나는 일이 아닌가. 더 낳은 미래? 오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날인데 내일의 무엇을 바라랴. 행복이란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니까.
 
  난리부르스의 부르스는 식자들이 말하는 ‘블루’의 의미가 아니라고 이 글의 서두에 말을 했지만, 처음부터 그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고백하자면 요즘도 아주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난리부르스든, 브루스든 결국 모두 블루에서 파생된 말이 아니겠는가. 그렇듯 나의 난리부르스도 결국 블루에서 시작된 것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도 나는 난리부르스와 블루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그 또한 좋은 것 아닌가. 약간의 블루, 사색한다는 이야기이고, 사색하는 남자는 그러지 않는 남자보다 멋있으니까.
 
  “먹고 싶은 것 없어?”
  “있어, 삼치구이!”
  만약에 ‘그만 둬!’라고 대답을 했더라면 나는 또 어째야 했을까. 내 촐싹거림에 매번 호들갑을 떨어가며 대답해준 마누라가 고맙다.
  내 글에 ‘부럽습니다.’하고 메아리를 달아주신 이웃 분들도 고맙다. 아무리 보아도 궁상 같은데 드러내놓고 ‘이렇습니다.’하는 내 모양새로 미루어 ‘낭만이라고 보아주십시오.’ 한다는 것을 알고 달아준 댓글이 아니겠는가. 이웃의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처마밑 부르스, 그 글을 올린 나와, 댓글 달아준 이웃이 짜고 친 고스톱 같은 모양새지만, 삭막한 인생사에 웃자고 한 일이니 어떠하랴.
  그리 보아줄 수 있는 그들의 눈, 그것도 일종의 난리부르스인지도 모르겠다. 삭막한 세상에서 그래도 어딘가에 숨어있을 촉촉함을 찾아 적당히 가릴 것은 가리고 드러낼 것은 드러낸 후 자세히 들여다보며 함께 화들짝 즐거워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 마음 즉, 난리부르스가 어쩌면 삶의 기술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있기에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내 곁의 인연들과 그제, 어제, 오늘 그랬던 것처럼 또 하루하루, 난리부르스를 떨어가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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