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신화회계법인 대표.공인회계사,Tnews 회계분야 자문위원)

요즘 때 아닌 선거철이다. 정치적 격랑으로 인해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이 벚꽃이 필 때 시작되어 장미축제 시기에 끝이 나게 되었다. 직전 대통령이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해야 될 가장 높은 자리에서 ‘국민을 위하지 못해’ 자리에서 갑자기 쫓겨 내려왔다. 그러다 보니 각 후보자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모든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국민들을 위한다는 데 정작 국민들은 왜 갈라져서 싸울까?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 이다. 참 좋은 말이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서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킨다니. 그러면 국가의 목적은 무엇이고 국가가 왜 생겨났을까? 원시시대 가족단위의 부족집단이 같이 일하고 서로 나누어 살며 공동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강력한 힘과 무기를 가진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러면서 말한다.
“지금부터 여기는 내 땅이니 너희들은 땅 사용료로 세금 내고 살아라.”
힘없는 사람들에게 선택지는 두 개 밖에 없다. 쫓겨나든 지, 지배자에게 복종하면서 살든 지.
동서양 막론하고 이렇게 해서 국가가 생겨났다. 홉스가 말한 괴물 ‘리바이어던’이 탄생한 것이다. 홉스는 자연 그대로라면 “이기적인 인간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되므로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이 생겨나서 조정자 역할을 해야 된다고 하였다. 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홉스도 그 당시 지배자의 눈치를 봐야 했을 터. 그래서 국가가 선한 목적을 가지고 탄생하였으니 국민은 국가의 명령에 복종해야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홉스가 말한 것처럼 국가가 없었다면 “이기적인 인간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지속되었을 지, 아니면 가족 중심으로 서로 같이 일하고 나누어 사는 평화로운 사회가 지속 되었을 지는 알 수 없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으니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선의의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싸움 하나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프리카나 아마존 오지에 부족 형태로 오래 지속되어온 지역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지역은 국가가 생겨났고 ‘남의 것을 빼앗는 악의의 지배자’가 세상을 움직여 왔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수 만년동안 여러 형태의 사회구조를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아마존에서 아직 부족형태의 생활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자기들 의지와는 상관없이 현재는 국가라는 울타리 속에 국민으로 존재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전 세계 동서고금을 통해 태어났다가 사라져 간, 그리고 지금도 살아있는 수 많은 리바이어던이 홉스가 말한 것처럼 선한 괴물이었던가? 대부분 긍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민혁명 같은 국민들의 저항 속에서 과거 보다는 리바이어던의 포악성이 점차 줄어들었고 현대 사회에서는 선한 리바이어던도 볼 수 있다. 북유럽 같은 복지가 발달한 나라에 있는 리바이어던은 참 착하다. 홉스가 말했던 “이기적인 인간들의 조정자 역할”을 잘해서 부자들 일부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잘 사는 나라를 선택하고 있으니 착하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 나라라고 해서 분쟁이 없겠으며 불만 없는 사람이 없겠냐만 그래도 세계의 모범적인 국가의 모습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선한 리바이어던이 지배해왔을까? 국가가 생긴 고조선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족과 양반 같은 소수 지배층과, 대다수인 피지배층으로 나누어져 살아왔다. 피지배층인 평민과 노비들은 ‘감당하기 힘든 양의 노동과 세금’을 부담하면서 살아왔고 지배층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면 최초 “이 땅은 내 땅”하고 등장한 이 괴물이 조선시대를 끝으로 사라졌을까? 물론 아니다. 지배자만 달라졌지 이 악한 괴물은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럼 이 괴물을 물리치는 방법은 없을까?
이전처럼 강한 지배자가 무기를 들고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세상도 아니다. 누구나 선거에서 한 표씩을 행사하면서 선한 괴물과 악한 괴물을 선택하는 권한이 국민들한테 있다.
위에 말한 정치의 정의를 다시 보겠다.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 여기서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국민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들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먼저 주장하니 별로 반박할 것도 없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국민들에게 이익이 될까? 국민이란 개념이 워낙 포괄적이어서 애매하다. 재벌 그룹 회장님도 국민이고 노숙자 김씨도 국민이다. 그런데 정치가들이 생각하는 국민은 선거 전과 후과 다른 모양이다. 선거 전에 약속한 공약을 그대로 실행하면서 정치를 했다면 지금처럼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사실 국가의 역할 즉 정치가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세금을 국민들로부터 거두어서 국민들에게 지출’하는 것이다. 북유럽과 같이 모두가 잘사는 바람직한 국가가 되려면 부자들한테 많이 거둬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많이 지출하면 된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것이 어렵다.
선한 리바이어던을 키울 것인가? 악한 리바이어던을 키울 것인가?
지배자들이 악한 리바이어던이 태어날 토양을 스스로 만들어서 태어났고 세상을 지배해 왔던 것이 역사이지만 이제는 우리가 리바이어던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그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관과 국민들의 의지에 따라서 선한 리바이어던이 태어나든 악한 리바이어던이 태어나든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지배해 온 ‘돈과 권력을 향한 출세지향적인 사고방식’이 악한 리바이어던이 자라나는 토양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존중받기를 원한다. 우리나라에서 ‘돈과 권력’이 남한테 존중받기 위한 가장 큰 수단이었기 때문에 돈과 권력에의 의지는 매우 크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점이 바뀔 때가 되었다. 그렇다고 실패한 공산주의의 이론처럼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누는 세상은 존재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많이 가진 사람이 더 가지는 불공정한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악한 리바이어던은 결국 자멸하게 되어있다.
피지배층이 무너지는데 지배층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나만 잘사는 세상을 꿈꿀 것인가?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꿈꿀 것인가?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세금 많이 내고 베풀어서 존경받는 세상, 선한 리바이어던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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