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철(회계사.자문위원)

2015년 초부터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 폭탄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웠다. 그 결과, 서민들과 중산층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많아졌는데 정부는 증세가 아니라고 한다.
담뱃값 인상분은 대부분 정부에 내는 담뱃세 추가부담이고, 연말정산도 공제되는 금액이 예년에 비해 적어져서 오히려 더 내야 되는 상황이 됐는데 증세는 아니라니!
그러면서 “과도한 복지는 국민을 나태하게 한다.”라고 정치인의 일갈이 이어진다.

증세와 복지.
요즘 방송, 신문기사 등에서 늘 보는 말이지만 증세와 복지가 무슨 상관이 있는 지 알 듯 모를 듯하다. 복지를 많이 하면 과연 나라가 망할까?
그리고 복지를 한다면 무슨 돈으로 하며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 복지를 해야 맞는 걸까?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으려니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공동생활을 시작하고 사람들 간의 계층이 처음 생기기 시작한 원시사회에 가보면 답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원시시대로 한 번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타임머신으로 시간을 거슬러 도착한 5천 년 전 지금의 서울.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원시인들이 여러 명 모여 살고 있다. 움막에서 살면서 농사도 짓고 힘을 합쳐 멧돼지도 잡아서 나눠 먹고 산다. 오랫동안 평화가 넘쳐흐르던 이 지역에 갑자기 힘 센 몇 명이 나서서 “여기는 우리 땅이야!” 하면서 몽니를 부린다. 그리고 멧돼지 잡을 때 사용하던 뭉툭한 돌도끼를 갈아 날카롭게 만들어서 지금부터는 이 도끼의 사용료를 내고 쓰란다. ‘다 같이 오손도손 평화롭게 살던 이 땅이 왜 저 사람들 땅이지?’ ‘짐승들을 잡을 때 같이 쓰던 도끼의 사용료를 왜 내야 되나?’ 나머지 사람들의 불평이 쏟아졌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전에는 다 같이 농사지어서 수확한 쌀과 사이좋게 나누던 고기도 이젠 공평하게 가져가지 못한다. 그 힘센 몇 명은 이제 농사도 안 짓고 멧돼지도 안 잡지만 수확한 많은 부분을 ‘자칭’ 땅과 도끼의 주인인 자기들이 먼저 갖고 나머지 얼마 안남은 쌀과 고기를 나누어 먹으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들 땅에 움막 짓고 살고 있으니 이제 임대료도 내란다. 자연이 준 이 땅이 왜 저들 땅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만 그 사람들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이제 이 땅에서 더 이상 살 길이 없다.

하늘에서 본 5천 년 전의 상황이 참 이상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다시 현재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와 본다.
5천 년 세월의 평지풍파를 겪고 이젠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서울. 자세히 보니 땅과 건물은 소수 부자들이 소유하여 엄청나게 높은 가격의 임대료를 받고 있고, 농사기구와 돌도끼로 상징 되던 생산수단이 이젠 여러 가지 복잡한 생산수단으로 변해서 이 역시도 그들이 독점하고 있다. 사람들은 땅위로 층층이 높게 지어 올려 진 아파트에 빚까지 내서 살면서, 토지와 자본 소유가치에 비해 노동에 대한 가치는 적어서 겨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 불균형의 상황을 별다른 불만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왔지만 최초 사유재산이 생기고 지배층이 생기기 시작했던 원시시대를 가보니 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평화롭게 살면서 다 같이 일하고 지혜롭게 나누는 공동체가 다수의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지만, 소수의 강자들이 자본과 생산수단을 독점하다 보니 나머지 사람들의 삶은 늘 고단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지만 살아가는 상황은 변한 게 없다. 소수의 사람들한테 부가 집중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은 소득을 나누어 살아간다. 세상이 바뀌어도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은 변하지 않아 강자들이 정하는 분배의 룰은 결코 바뀌지 않았다.

이런 불평등한 세상, 부자는 더욱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 지는 이런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없을까?
최초 원시시대처럼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누어 살아가는 것? 그러한 세상은 이론 속에서만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능력, 노력에 따라 적절하게 분배되지 않는 세상은 오래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을 역사의 교훈 속에서 우리는 이미 배웠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것일까?
강자 논리의 소득 분배의 룰 위에 올바른 세금 제도가 자리 잡는다면 가능하다.
많이 버는, 아니 많이 벌 수 밖에 없는 토지와 자본의 소유자들이 그 만큼 많은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을 재원으로 하여 소득 하위 층을 향한 복지가 이루어진다면 지금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자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토지와 자본 등의 자산 이득에 부과되는 세금을 재원으로 하여 서민층에 복지지출을 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빈익빈 부익부가 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장치가 세금의 역할인 것이다. 부자들만 더 살찌면 그 사회가 오래 가겠는가? ‘농사짓고 멧돼지 잡는 사람’들이 건강해야 그 사회도 건강하고 오래 지속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증세와 복지는 선택이 아니라 건전한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증세와 복지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쏠림을 막는 역할을 하는 완충장치로 본다면 당연히 부자증세 서민복지가 맞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부자들의 조세저항은 서민들보다 훨씬 강하다. 실제로 종합부동산세로 자산에 부과되는 세금을 높이려고 시도한 적이 있지만 얼마가지도 않아 거의 무력화 되었다. 오히려,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줄어드는 세수를 보충하기 위해 담뱃세, 근로소득세 인상 등으로 서민증세만 이루어지고 있다. 복지 지출도 OECD 회원국 중에 거의 꼴찌라고 하는데 부자증세가 아니라 서민 증세를 하고 있으니 부의 재분배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많이 가진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고 그 돈으로 사회 약자 층에 대한 복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세상이 오기 위해 제도의 변화에 우선하여 선행 되어야 할 조건으로, 부자가 존중받는 사회가 아니라 세금 등으로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도록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이 갑자기 바뀌진 않는다. 그러나 아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점점 세상도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많이 베풀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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