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학 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

현대를 경제전쟁의 시대라고 한다. 일단 싸움에 임하게 되면 이겨야 한다. 그러나 인생은 장기전이다. 항상 이길 수 있다면 더할 바 없지만 그렇지 못 할 때도 있다. 상황이 불리 할 때엔 잠시 피하여 후일을 도모하는 것도 장기전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삼십육계(三十六計) 줄행랑’이라는 말이 있다. 이 ‘삼십육계’라는 말과 ‘줄행랑’이라는 말은 전쟁에서 싸우지 않고 일단 도망가는 것을 의미한다.

단공(檀公)의 삼십육가지 책략에 보면 적을 속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고육계(苦肉計)가 34계이고, 적벽대전으로 유명해진 연환계(連環計)가 35계이며, 마지막 36번째 계가 바로 ‘주위상(走爲上)’ 으로 상황이 불리 할 때는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라는 의미다. 아마도 이 ‘줄행랑’이라는 말은 이 ‘주위상’의 의미와 비슷한 발음으로 인해 와전돼 전해진 용어가 아닐까 한다.

이렇듯 전쟁에서는 맞서 싸워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에 맞추어 물러날 줄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역사를 보면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수없이 많은 공을 이루었음에도 물러 날 때를 알지 못해 좋지 못한 결말을 맺은 예가 적지 않다.

춘추시대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손무(孫武)와 오자서(伍子胥)는 오왕 합려(闔閭)를 도와 초(楚)나라를 치고 오(吳)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지만 손무는 때에 맞추어 스스로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보낸 반면, 오자서는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해 모함을 받아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한신(韓信)과 장량(張良)은 둘 다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창업한 일등 공신이지만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안 장자방 장량은 병을 핑계해 장가계(張家界)로 들어가 여생을 신선처럼 살아갔으며, 반면 물러날 때를 모른 한신은 불행한 최후를 통해 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 토사구팽)이라는 유명한 고사를 남기게 됐다.

이렇듯 나아갈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개인 고유의 성패 리듬과 주기가 존재하는데, 이중 10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석하리듬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자신의 행적을 돌아보거나 주변의 성향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믿었던 사람이 믿음을 배신하고 의지했던 사람이 떠나갈 때 △사소한 실수가 큰 오해를 불러올 때 △이유 없는 짜증이 몰려오고 공허함을 느낄 때 △신체의 모든 기능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 △뭔지 모르는 막연한 불안감이 떠나지 않을 때 △오해를 풀지 못하고 일이 더 꼬여갈 때가 있다면, 바로 그 때가 자신이 잠시 물러나야하는 순간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상책이다.

나아가야 할 때를 아는 사람보다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 인생의 장기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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