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호 서울 도림한의원장

       강성호 도림한의원장
진료실 문을 열고 40대 중반의 성인 여성이 방문했다. 진단명은 우울증과 불안증상. 2년간동안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치료를 받았지만 진정과 재발이 반복돼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 환자는 평범한 40대 가정주부의 삶을 산다고 털어놨다. 아이들은 고등학생, 남편은 중소기업 기업인, 시아버님은 별세했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증의 치매환자다.

남들과 별다른 게 없지만 그녀는 항상 마음이 불편하고 모든 일에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원인은 2가지. 가족의 무관심과 치매 시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압박 때문이었다.

남편은 어머니의 상태를 알고는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녀들은 엄마를 살림하는 사람정도로 인식한 채 무관심해 보였다. 문제는 시어머니의 오락가락하는 정신이다.

평상시 온화하던 어머니도 치매 증상이 찾아오면 폭언, 공격성, 불안초조, 경계성, 인격장애 등을 며느리에게 쏟아 냈다. 남편이나 자녀들 앞에서는 좀처럼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인은 시어머니와 단둘이 남겨지면 몹시 불안하고 초조해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듯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처럼 우울증은 대부분은 일상생활의 작은 부분에서 비롯된다. 정확한 상황보다는 마음을 둘 곳이 없어 생기는 불안감을 동반하며 자신도 모르게 엄습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필자는 부인에게 우울감을 줄여주는 한약 처방과 함께 어머니의 치매에 효과가 있는 한약을 동시에 처방했다. 치매의 공격성과 인격장애에는 한약이 매우 양호한 진정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처방 후 3개월이 지난 후 40대 여성환자가 다시 한의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시어머니와 함께 내방했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부인은 시어머니와 팔짱을 끼고 웃으면서 친근한 모습을 보였다.

“어머님 커피에 얼음 세알 넣었어요. 호호.”
“그래, 얼음을 안 넣으면 너무 뜨겁고 맛이 써.”

이렇게 서로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한의학은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한다. 우울증을 겪는 며느리에게는 이에 맞는 처방을, 치매 어머니에게는 그에 맞는 한약을 처방했을 뿐이지만 3개월 사이에 가족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이유는 무관심한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마음의 병에 ‘어머니를 생각해 지은 한약’이라는 약을 함께 투약했기 때문이다.

치매는 한 개인의 질병이기도 하지만 그로인한 폐해는 모든 가족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이를 그저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그 가족 구성원의 희생만을 강요하며 또 다른 환자를 만들어 내기보다 먼저 이를 치료해 늦기 전에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병보다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한의학이 좋다. 그래서 오늘도 나를 찾은 환자의 마음을 함께 나누기 위해 애쓴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배려하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다정한 미소를 한번 날려보라. 그것이 최고의 ‘보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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