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드레택시의 서정갑기자

▲ 곤드레택시 서정갑기자는 초보택시일기에 이어 귀농일기를 써가고 있다.

사연 많았던 30년간의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귀농한지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퇴 후 여생을 보내기 위함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귀농을 결심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막무가내 식 도시탈출 이었기에 귀농에 대한 교육이나 지식이 전무 한 상태였다.

다행스러운건 목적지가 고향이라는 점, 내가 살던 헌 집이 있고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땅 몇 필지가 있었으니 귀농의 결심이 어렵지는 않았다.
2년이 지난 지금 나의 귀농생활을 돌아보면, 마늘과 약콩 이모작, 농어 민어, 간혹 갑오징어 꽃게 붕장어 농어 우럭 등을 잡아 판매하는 어업, 매년 두 번씩 산불 감시 진화 임무와 홍보방송 관련, 해변 쓰레기 수거, 토지거래 조사 등의 면사무소 일용직 근로 등이다.
또한 이 섬에 단 한명 뿐인 환경감시원이고 전국 배포되는 티뉴스 기자, 1년 과정의 신안군 농업대학 학생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의 명칭은 “신안군 슬로시티 농업대학”이다. 신안군 기술센터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신안군과 한국생산성본부에서도 함께한다. 각 반 20명씩이 있는 학교에서 나는 농업 마케팅반에 다니고 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약 두 시간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또 차를 타고 하는 등굣길과 하교길이 만만치 않다.
아침부터 부리나케 준비하고 두손을 모으며 어머니께 인사를 한다.
“학교다녀오겠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오냐 공부 잘하고 일등 100점 해 오니라”고 대답하신다.
일본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삿토 잇사이는 ‘소년시절에 배우면 장년이 되어 도움이 되고 장년이 되어 배우면 늙어서 쇠하지 않고 노년에 배우면 죽어도 이름이 썩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삿토 잇사이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소년시절에 못 배워서 이제라도 배워보고 싶은 것이고 또한 정규과목을 배울 수 없으니 농어촌에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배워 보고싶다.
농촌에서 이러쿵 저러쿵 바쁘게 살다가도 가끔 택시기사로 바쁘게 살던 때가 떠오르곤 하는데, 2010년 어느 날 나는 내 생의 가장 무서웠던 손님을 만났던 일을 생각하면 간혹 피식 웃음이 나곤 한다.
나이가 이쯤 되니 귀신이든 날강도든 무서운 존재는 없었는데 그날은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택시를 세워놓고도 문을 열지 못해 택시를 타실 수 없는 손님이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문을 열어달라는 부탁에 갸우뚱하며 열어드렸는데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양손 가득 수지침을 꽂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지침을 맞고 나서 지병이 없어졌다는 그 손님의 손을 보고 나니 침을 맞는 게 더욱 무서워졌던 일이 떠오른다.
이렇게 웃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로 가득했던 택시기사로서의 생활, 그리고 티뉴스에 글과 만화를 연재하며 늘 새로운 것에 도전했던 생활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도 새 터전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며 계속 도전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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