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 병 삼

“안녕하세요?”
“……?”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맹랑한 일이? 3측 아낙네 말이다. 그녀는 오늘도 인사를 받지 않았다. 퇴근을 해서 마악 아파트 현관 자동문을 들어서려는데 또 마주쳤다. 엉겁결에 허리까지 꺾어서 절을 했어도 전혀 반응이 없다. 옆구리 찔러 절 받기라는 말도 있지만, 그 여자에겐 절대로 인사를 하지 않기로 내심 작정한 것이 바로 며칠 전, 경비 아저씨와 의기투합했던 날이었는데…….

그네가 새로 이사 온 지도 벌써 일 년 남짓은 되었을 게다. 한 10년간을 스스럼없이 지내던 지영네가 판교의 새 아파트로 옮겨가면서 이웃사촌이 졸지에 없어져 버렸다.

푸근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기를 내심으로 바랐던 내가 바보였지, 새 이웃이 된 이들은 바로 아래층에 사는 우리에게 입주신고조차 하질 않았다.

이삿짐을 나르고 새 가구들을 들이는 소란을 피우면서도 죄송하다는 상투적 치레마저 건너뛰었다. 그래도 나는 그 여편네를 만날 때마다 번번이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서른 예닐곱 살 쯤의 그 여자는 도통 대응을 보여주질 않는다. 마흔 살 전후로 짐작되는 그 집 남자도, 환갑을 넘긴 나를 소 닭 보듯이 함은 마찬가지다. 너댓 번 정도 마주쳤을까, 나는 궁금한 나머지, 큼지막한 차에서 내리는 그를 보고 조심스럽게 새로 이사를 왔느냐고 말을 건네서야 겨우 3층 남자임을 확인한 채다.

혹시 우리 가족들이 그들에게 서운하게 한 일이 있나 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확인을 해 봐도 그럴 만한 단서는 전혀 없다. 그러던 차에 나는 경비 아저씨와의 잡담 중에 슬그머니 그 동안의 불편한 실정을 푸념 삼아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제서야 일흔이 가까운 그도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그 정도는 아파트 주민들이 이미 다 겪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험담을 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하다”는 말이 유태인의 계율서인 탈무드(Talmud)에 전한다. “살인은 한 사람만 상하게 하지만, 험담은 험담을 하는 자신과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는 사람, 그 험담의 화제가 되는 사람을 상하게 한다”고도 했지만 해병대 출신, 다혈질 영감도 그들의 흉을 안 볼래야 한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인지,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는 듯이, 그네들의 못마땅한 외양까지 마구 헐뜯어댄다. 웬 여자가 키빼기만 멀쑥하고 꼭 철따구니 없는 야생 검정말처럼 생겼다거니, 남자를 들먹이면서는 꼭 소도둑놈, 건달, 만무방 같다느니…….

게다가 세세히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남편은 무역회사를 운영한다는데, 국외 출장이 잦은지 1억5천만 원도 더 나간다는 외제 승용차는 거의 운행도 하지 않고, 아이들은 아들 둘에 딸 하나, 3남매라는 것까지 김씨 아저씨는 확인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초등학교엘 다니는 애들조차도 한결같이 절을 할 줄 모른단다.

그러니 버르장머리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그들과는 아예 상종할 생각도 말고 그냥 못 본 채, 맘 편히 지내란다.

경비 영감의 말에 슬슬 맞장구를 치다 보니, 나도 슬그머니 부아가 끌어올랐다. 젠장, 젊은 것들이 돈푼 꽤나 있다고 사람들을 잔뜩 업신여긴단 말인가? 생판 모르는 사람끼리도 맞닥뜨리면 눈길을 꿈쩍이는데, 아무래도 참 희한한 일이다. 고개 한번 끄떡하면 모가지가 댕강 부러지나?

성조 씨네, 길형 씨네, 경수네, 영민네……, 다른 이웃들은 대부분 만날 때마다 어른, 애 가림 없이 서로들 정겨운 말도 고분고분 곁들이며 지낸다. 객지 벗 십 년이라, 남정네들끼리는 연령이나 지위를 불문하고 소주잔도 부딪치며 살갑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치들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고?

만날 때마다 반가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발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도 있다. 하물며 저들은 만날 적마다 아예 내 비위를 시커멓게 그슬려 놓으니, 마주칠 적마다 외면하기도 민망스럽고 껄끄럽다.

인사란 반가움과 고마움, 미안함과 서운함, 공경스러움과 겸손함 등을 상대에게 전하는 기본 절차다. 사람살이에 있어서 가장 본능적인 감정과 예의의 표현이 바로 인사다. 인사를 주고받음에는 위아래·선후가 없고, 인사하는 데 밑천이 드는 것도 아니다.

인사하는 얼굴에 어찌 침을 뱉으랴? 공손히 절을 했다고 두들겨 패는 경우를 보았는가? 인사는 상대방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는 열쇠라는 말도 회자(膾炙)된다.

하기야 주변을 두루 살펴볼진대, 그 사람들만이 유별나게 그러는 것도 아닌 듯싶다. 한 마디의 따뜻한 인사말이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는데,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도, 사제 간에 상하·동료 간에, 진정한 인간애가 담긴 인사 절차가 사라져 버린 지 이미 오래다. 막말로, 화냥년이 내지른 후레자식처럼 싸가지가 없는 무례한(無禮漢)들이 수두룩하다.

세상 꼴이 이리 된 이유로, 각박하게 변해 버린 현대 문명사회의 병폐를 지적하기도 하고, 전통적인 인성 교육이나 윤리·도덕 교육이 증발한 국적 불명, 지식 위주의 학교 교육을 질타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세태 탓이나 하면서 저들을 무심히 뭉개버리고 지내야 하는가?

그렇게 3층 가족들이 몹시 괘씸한가 하면, 한편으로 그들의 황당한 비례(菲禮)가 오히려 나 자신을 뒤돌아보는 호기가 되기도 하여 은근히 기껍기도 하다. 본디 성격이 둥글지 못해서 남들과 덥석덥석 폭넓게 교류할 줄을 모르고 살다보니, 결례를 범했음직한 경우가 얼마나 잦았을까.

또한 설렁설렁 인사 받을 줄만 알았지, 인사를 건네고 답하는 거동이 볼썽사납거나 아니꼽지는 않았는지를 자성케 하니 말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행정관서나 회사를 경영함에 있어서 구성원의 능력이나 재질에 따라 임면(任免)이나 배치 등을 잘해야 한다는 인력 관리 차원에서 다반사로 쓰이는 관용어지만, 나는 이 말을 억지 춘향,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전용해 보는 만용을 부려본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말고, 고개도 숙이고 허리도 굽혀서 꾸벅꾸벅 열심히 절을 해대야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술술 풀리는 법이니, 인사 예절이야말로 만사형통의 관건(關鍵)이 아닐는지!

 

작가 전 병 삼

충북 음성 출생
이음새문학회 회장
지구문학작가회의 부회장
한국수필문학가협회 회원
강남문인협회·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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