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숙 작가

아들보다 더 좋은 학교

오늘도 두 분 시부모님은 ‘아들보다 더 좋은 학교’에 놀러 가신다. 장대비가 땅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할 때도, 바람이 한바탕 거리 청소를 하는 흐린 아침에도 여전히 아버님 어머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을 나서신다.

두 분이 다니시는 아들보다 더 좋은 학교는 북적거리는 시장통 2층에 한국OOO 의료기관 간판을 내걸고 마음 훔치는 장사를 한다. 적적하고 외로워서 하루해가 긴 노인들이 들어가면 아들 나이 정도 되는 직원들이 환하게 맞이해주며 곰살궂게 팔짱도 껴주면서 어깨를 주물러준다.

그리고 2시간 내내 재미있고 다정하게 놀아주며 사이사이에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까지 가르쳐 준다. 또 여기에 덧붙여서 노인들의 자존감을 끊임없이 높여주며 친아들보다 더한 사랑과 관심으로 마음을 훔친다.

노인들은 내 자식보다 더 잘해주는 직원들에게 어느새 마음이 헤벌쭉 풀어져서 꽁꽁 여민 주머니 끈이 풀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저 흐뭇하기만 하다.

1.
시어머니의 초기 순례는 ‘묻지마 공짜’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업체는 화장지, 달걀, 보리쌀, 가래떡, 주방세제 같은 공짜선물을 듬뿍 안겨주면서 우리 업체는 절대로 물건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라는 멘트까지 날리면서 2시간 꼬박 노인들을 예우해주며 환심을 사는 신바람 상술을 펼쳤다.

여기에 하루 하루가 심심한 동네 할머니들은 입소문을 내며 열풍처럼 몰려들었고 어머님도 친구 따라 다니기 시작하셨다. 매일 방문하면 경품까지 지급하는 등 상품을 사라는 말은 일절 안한 채 일주일동안 인심 좋은 공짜 선물 세례를 퍼붓던 끝에 드디어 슬슬 상술이 나왔다.

‘에구, 미안해서 어째. 시늉이라도 이 정도는 사줘야 쓰겠네’로 시작된 어머님의 미안한 구매는 매일 티스푼으로 한 숟가락만 먹으면 만 가지 병을 다스린다는 화장품 크림통 만한 크기에 들은 고운 소금을 십 만원에 구입한 것을 시작으로 전개되었다.

나날이 수험생이 깔고 앉으면 뇌세포가 살아 움직인다는 금박실 두른 오 만원 짜리 솜 방석, 이건 비싼 베개이니 꼭 베고 자라 하시며 끝내 가격을 가르쳐주지 않은 플라스틱 잘디잔 둥근 조각이 잔뜩 들어있는 베개, 녹용가루, 흑삼, 원적외선이 나오고 전자파가 생기지 않는다는 물침대까지…… 집에는 어머님의 미안한 구매 물건이 슬금슬금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어머님의 쌈지 돈 주머니는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2.
한동안 뜸했던 어머님의 순례는 불교를 도용한 OOO업체에 꽂히셨다. 어느 날 친구 분의 소개로 발을 들여놓으신 어머님은 부처님을 파는 상술에 혹하셨는데 이곳 역시 사근사근한 남자들이 아버님, 어머님 하며 물건을 팔았다.

어머님은 깊은 산속 암자에서 고승이 도력을 일으켜서 썼다는 행운을 가져오고 삼재를 물리친다는 부적을 사시는 것으로 시작해서, 각각 십이지의 띠 동물이 새겨져있는 수저까지. 잔챙이부터 사시더니, 드디어 사망시에 절에 영가를 모셔준다는 극락 왕생 발원 위패를 시할아버님부터 어머님 위패까지 네 분 것을 구매하셨다.

그리고 집에는 <안치단 사용승인서 봉안증명서> OO종 천년고찰 OO사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오셨다.

3.
이제 어머님의 관심은 OOO의료기로 바뀌셨다. 이곳은 매 시간마다 노인들을 모아서 무료로 의료기를 체험하게 해주는데 상술의 주제는 우리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생로병사이다. 이곳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검증이 안 된 이상야릇한 새로운 기계를 체험하게 하면서 혈액이 맑아지네, 성인병이 소멸되네 하며 노인들에게 병이 들면 아들 딸 며느리에게 구박받는다며 끊임없이 내 건강 내가 지켜야 한다고 세뇌작업을 했다.

이번에도 어머님은 벼르고 벼른 끝에 만병을 고친다는 기계를 덜컥 사셨다. 그런데 이 물건은 손잡이를 양 손에 쥐고 발바닥을 전기판에 대고 있으면 전기가 부르르 살 속으로 파고들며 온 몸이 전기 파장을 일으키면서 혈액이 맑아진다는 거대한 원리를 가진 기계였다.

이 요상한 기계를 두 분이 번갈아가며 하시더니 일년도 지나지 않아서 기계 값의 팔분의 일 가격만 받고 체험관에 출석하는 노인에게 파셨다.

4.
이번에는 다시 한국 OOO의료기로 바꾸신 어머님을 따라서 다니시던 아버님께 열풍이 옮겨졌다. 두 해 전에 뇌일혈로 쓰러지신 후로 말씀이 어눌해지고 행동도 느려지시던 아버님은 이 업체의 출석이 유일한 소일거리이다.

학교처럼 일요일과 공휴일을 빼고 몇 개월을 꼬박 다니시던 아버님은 소변색이 맑아지셨다며 어느 날 이 기계를 사야겠다며 식구들에게 의견을 내셨다. 모두들 이번에는 정말 참으시라고 말리니 아버님은 며칠 동안 버럭 역정을 내셨다.

그런 사연 끝에 집에 들어온 기계는 녹음기만한 크기에 전선이 몇 가닥 달린 이상야릇한 물건이었다. 이 물건은 콧구멍 속에 집게처럼 생긴 전원을 꼽고 몸 안으로 미세한 전기를 흘려보내는 원리인데 열심히 몰두하시는 아버님을 보면 코 안이 발그레 등불이 켜지는 모양새이다.

효도와 불효의 간격은 어느 만큼이 적당할까? 분명히 이론상으로는 삭막한 고령화시대에 외로운 노인들에게 접근한 나쁜 상술인 줄을 알지만 모처럼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오늘도 건강 기계를 사신 시부모님은 당당하게 어깨를 쭉 펴고 아들보다 더 좋은 학교에 다니신다. 만만치 않은 돈을 주고 구매한 효력이다. 두 분이 나가시는 모습을 배웅하면서 그래도 집에 계시면 티브이와 친구하실 텐데 매일 걸어서 시장까지 다니시니 운동도 되고 시간도 흘려보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홍재숙 작가
작가 홍 재 숙

국제PEN한국본부회원
한국문협 저작권옹호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한국문협 書로書로 독서회원
지구문학작가회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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