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석 편집국장

행복과 불행

“은행창구 앞에서 나의 경제적 가치를 대출 가능액으로 환산하는 순간…, 멘붕(멘털 붕괴)이다.”
“강의 없는 방학 때 아내가 마이너스통장에서 용돈을 꺼내 줄 때는 약간 미친다.”

끼니는 가깝고 희망은 멀다. 위에 적은 두 말은 인문학 연구자들이 털어놓은 현실적 고충들이다. 아버지가 식사 중에 이가 빠지셨는데 아버지의 이 하나도 해줄 수 없는 현실이 고달픈 인문학자들이다.
그들에게 고달픈 현실에도 연구의 끈을 놓지 않는 원동력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들은 “나태에 물들거나 세속적 관행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문학연구”라고 말하며 “현대문학 작품을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때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이런 고통을 느낄까? ‘뇌는 어떻게 당신을 속이는가’(제프리 슈워츠, 레베카 글래딩著 갈대나무·2012)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의 욕망, 생각, 충동, 느낌의 출현 자체에는 책임이 없지만 출현된 것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우리 책임이다.”

정신의학자이자 인지신경과학자인 두 저자는 인간의 뇌가 소위 ‘오버’를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안 좋은 것은 불쾌하게 기억해서 피하려 하고, 좋은 것은 즐겁게 기억해서 더5 자주 경험하려는 진화적 적응과정을 거치다보니 인간의 뇌는 정서적 경험을 과대포장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경향이 제대로 된 판단과 선택, 행동을 못하도록 왜곡을 일으킨다. 어떤 행동을 하면 할수록 뇌는 생존에 필요하다고 간주해 강화하려고 한다. 불만, 자기비하, 패배의식, 심한 자책, 각종 중독, 나쁜 습관들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들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으로 뇌의 거짓말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끌려가지 말아야 하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으로부터 진정한 자아를 구별해서 찾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러려면 감정이나 욕망, 자기자신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믿는 가치와 목표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사람들은 유아 시절에 부모로부터 주의집중, 수용, 애정, 칭찬을 받으면서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기초를 다진다. 뇌의 속임수를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면 스스로에게 그런 것들을 베풀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문제로만 여기고 배척한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해와 적당한 수용을 하되 그 안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바탕위에 나가고자 하는 방향과 목표를 잃지 않고 노력을 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에는 책임이 없지만, 그 두려움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책임이다. 뇌가 당신을 속일지라도 당신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 이것이 그들이 얘기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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