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치과의원 양재강 원장

“원장님, 며칠 전에 택시에 뭐 놓고 내리신 것 있으세요?”
진료 중에 직원이 묻습니다.
한참을 생각해도 엊그제 세미나에 다녀오며 택시를 탄 적은 있지만 잊은 물건은 없었습니다.

“어떠냐 택시기사분께서 손님이 물건을 놓고 내리셨는데 네모난 박스 안에 치과용품 같은 기구들과 치아모형 등이 있고 거기에 푸른치과라고 쓰여 있답니다.”
푸른치과라고까지 쓰여 있다니, 다시 한 번 혹시라도 분실한 것이 있었나 돌이켜봐도 전혀 아닌데…….

문득 푸른치과가 한두 군데가 아니니 다른 푸른치과의 원장님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료가 끝나고 남겨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연세 지긋해보이는 기사님께서 전화를 받으십니다.
“분실물에 전화 연락처는 없고 푸른치과라고만 써 있는데 혹시 아니냐”고 해서 “푸른치과는 맞지만 제 이름이 아니고 다른 푸른치과인 것 같다”고 말씀드렸죠.

같은 이름의 치과가 여러군데 있을 수 있으나 다른 푸른치과에 연락해보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분실물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택시기사님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손님이 놓고 내린 물건은 치과교합기이고 다른 푸른치과 원장님께서 놓고 내리신 것 같았습니다.

치과교합기는 환자의 위아래 치아가 물리는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고안된 기구로서 고가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치과대학 본과시절에 구입해 평생 다루게 되기 때문에 학부시절의 추억과 손때가 묻어있게 마련인 치과의사에게는 아주 소중한 물건입니다.

서울에만 푸른치과가 5~6여개 되지 않을까 싶은데 택시기사분께서 찾다가 지쳐 포기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이버 검색창에 이름을 쳐보니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찾을까 고민을 하다가 치과의사들이 임상을 비롯한 각종 정보를 교류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생각났습니다. 오랜만에 사이트를 망문하니 의사 본인여부확인을 위해 묻는 것이 많습니다. 겨우 로그인이 되어 회원검색 기능을 찾아 이름을 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엔터키를 누르니 회원정보가 뜹니다.

너무 반가운 마음으로 자세히 보니 경기도에 있는 푸른치과더군요. 전화번호를 찾아 병원으로 전화를 드리니 데스크 직원이 전화를 받습니다. 존함을 확인한 후 원장님을 바꿔달라고 하니 점심식사하러 나가셨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더니 원장님이 교합기를 분실하셔서 걱정하고 계셨다며 반색을 하시더군요. 택시기사분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리고 흐뭇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렇게 바로 잊고 있었는데 이튿날 그 원장님께서 감사하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에 세미나가 있어 교합기를 들고 갔다가 택시에 놓고 내려 무척 속상했었다고 하시네요.
택시기사분과 연락이 되어 교합기를 찾게 되었다며 너무 고마워하셨습니다. 저는 뭐 한 것도 없지만 보람되고 덩달아 기뻤지요.

그렇게 또 잊고 있었는데 며칠 후 병원으로 택배가 왔습니다. 그 원장님께서 맛있는 사과 한 박스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자판 몇 개 두드려 전화연결 해드린 것 뿐이었는데 이렇게 감사의 선물을 받으니 가쁘기도 하고 과한 선물에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감사전화를 드리니 택시기사님께도 사례를 했다면서 다시 한 번 고맙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일상에 찌들어 행복보다는 자칫 불행을 느끼며 살게 됩니다.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우리는 스스로 많은 시간을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향한 작은 친절과 배려는 그만한 노력과 시간 없이도 서로에게 큰 행복을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런 마음이 일방이 아닌 양방으로 주고받게 되면 그 흐뭇함은 몇 배가 되더군요. 서로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이이지만 택시기사님들의 작은 노력, 저의 작은 노력, 원장님의 작은 노력으로 각자의 마음속에 흐뭇한 애정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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